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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한 네 가지 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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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左),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右)

유엔은 70년 전 ‘전쟁의 참화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지금 세계를 둘러보면 유엔이 임무에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중동을 거쳐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사람이 전쟁 참화로 목숨을 잃거나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또 위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엔은 이들을 구하기에 무력해 보인다. 유엔을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만들 수 있는 네 개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려 한다.

 문제의 큰 원인은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다. 모든 회원국을 위해 세계의 평화와 안보를 유지해야 하지만 더 이상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드는 무장 반군세력 사이에선 말할 나위도 없고, 유엔 회원국으로부터도 존경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 세계, 그중에서도 남반구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5개 승전국이 2015년에도 여전히 안보리를 지배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안보리 권위와 결의의 정당성에 점점 더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면 결국 우리 스스로가 위험에 처할 뿐이다. 1945년 이후 시대는 변했고 안보리는 이에 적응해야만 한다.

 거의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의석을 늘려 새로운 상임이사국을 맞이하자는 제안을 선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새로운 상임이사국을 어느 나라로 할지, 새 상임이사국이 지금처럼 거부권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선 수십 년째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첫 번째 제안은 이런 교착상태 타개와 맞물려 있다. 상임이사국 자리를 새로 만드는 대신 비상임이사국보다 임기(2년)가 훨씬 길고 임기가 끝나도 즉시 재선될 수 있는 새로운 자격의 회원국을 만들어 보자. 다시 말해 다른 회원국들의 신임을 받기만 하면 상임이사국이나 다름없는 자리 말이다. 이것이 훨씬 더 민주적이지 않을까?

 둘째, 기존의 5개 상임이사국엔 엄숙한 서약이 필요하다. 5개국이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했다 해서 지금의 시리아 사태처럼 사람들이 잔혹한 범죄로 위협받는 상황에서조차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일이 방치돼서는 안 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5개국이 자신의 국익을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해야 한다. 안보리에 회부된 안이 세계 평화와 그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혜택보다 더 많은 피해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될 경우에만 거부권이 행사돼야 한다. 이와 더불어 1개 이상의 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다른 상임이사국은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모두가 동의하는 효과적 해법 마련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셋째, 안보리는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받게 되는 사람들 입장을 좀 더 경청해야 한다. 상임이사국들은 자신의 결정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될 사람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비밀 협상으로 합의를 이루는 경우가 너무 많다. 지금부터라도 상임이사국과 안보리 전체는 분쟁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그룹에 유엔의 결정을 알리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를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안보리와 상임이사국은 유엔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를 선출하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신임 사무총장 선출은 더 이상 비공개 회의를 통해 협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 유엔 헌장의 정신과 조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각국 정부가 자국 시민을 후보로 내면, 안보리 이사국이 비밀투표(스트로 폴)를 여러 번 시행해 가장 포괄적이고 강력한 지지를 받은 후보를 사무총장으로 선출한다. 지금은 5개 상임이사국의 투표용지 색깔이 달라 각국의 선호 여부를 다른 10개 비상임이사국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무총장 후보는 개방적이고도 철두철미한 절차를 통해 뽑아야 한다. 남녀, 지역에 관계없이 가장 훌륭한 자격을 갖춘 후보들이 대상이다. 그러고 나서 안보리가 1명 이상의 후보를 총회에 추천해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최대 지지를 받은 후보에게는 연임이 불가능한 7년 단임의 임기를 부여한다.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그 혹은 그녀는 자신을 지지해 준 대가로 특정 회원국에 자리나 혜택을 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8명의 남성을 선출했으니 이제는 여성이 나올 때도 됐다. 이 선출 절차는 지체 없이 채택돼 2017년 1월 최고의 자격을 갖춘 사무총장을 선출하는 데 활용돼야 한다. 이 네 개 제안은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 리더 모임 엘더스 그룹(The Elders)의 선언문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우리는 이 제안이 유엔의 권위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아울러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전 세계 사람들이 자국 정부에 우리 선언문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기를 바란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노르웨이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