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핍수범…인플레 소지 줄여|동결 예산안을 풀어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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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결예산안이 확정·발표되었다. 팽창일변도의 과거 정부살림에 비한다면「기록적」인 대전환이다.
동결을 관철시킨 첫번째 원동력은 정부 스스로도 이미 밝혔듯이 그것이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 강력한 정치적 결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예산동결에 대한 명분은 말할 것도 없이 과거의 만성적인 재정팽창에 따른 부작용들에 대한 반성만으로도 충분하다.
인플레에 앞장서온 정부, 빚지는데 앞장서온 정부, 금융시장을 왜곡시킨 장본이었던 정부 등에 대한 반성이다.
이같은 기본적인 인식이 두터워진데다 작년이후 물가안정에 대한 자신감과 외채누적에 대한 경각심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급기야 「예산동결」의 결심으로까지 발전된 것이다.
동결예산을 원만하게 꾸려나갈 경우 사실 경제전반에 걸쳐 대단한 채질개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산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일반회계와 각종 특별회계 등을 합친 통합재정수지의 적자폭이 금년의 2조원에서 1조원으로 크게 줄고 이렇게되면 정부가 시중에서 꿔다 쓰는 돈이 5천억원 가량 감소하게된다. 그만큼 민간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상습적인 한은차입이나 국채발행은 일체 안하겠다는 것이고 정부가 들여오는 외채도 금년의 절반수준 (1억9천만달러)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산동결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보다 선언적인 면에서 찾아진다.
일반의 반응도 내용이야 어떻든 정부 스스로가 전에없이 내핍과 절약에 솔선수범하겠다는 그 자체에 대한 기대감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예산동결이 지니는 충분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막상 무수한 난관과 문제점을 피할 수 없는 형편이다.
우선 공무원의 처우개선 문제다. 예산동결을 선언하고 나선 마당에 마땅히 예외일수는 없다. 그러나 5차5개년 계획상에는 물가 오르는 몫을 별도로 하고도 실질적인 봉급인상을 매년 5%씩 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이것 역시 공무원의 저임금에 따른 부작용이 과거에 얼마나 심했던가하는 심각한 반성의 결과로 나온 정책이었다. 한창 강조되고있는 「사회정화」적인 차원에서도 공무원의 처우개선은 시급하다고 강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동결과정에서 가장 난제였던 지방재정에 대한 지원도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우려가 짙다. 당초 약속대로라면 중앙정부는 지방재정에 대해 1천3백억원 가량의 특별교부금을 줘야하는데 이것을 모두 깎아버린 것이다.
논리적으로만 따진다면 중앙정부의 긴축에 맞춰 지방재정도 그 정도의 고통쯤은 당연히 참아내야 한다. 특히 예산집행의 가장 어수룩한 족으로 평소에 지적 받아왔던 터이니 만큼 합리적으로 개선할 여지도 많다는 것이 예산당국의 설명이다.
바로 그 점이 주목을 끈다. 만약 주기로 했던 특별교부금1천3백억원(법정교부금의 l5%)을 안주고도 원만하게 지방재정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단한 행정쇄신이 이루어졌음이 틀림없을테고 나아가서 이번 동결예산의 으뜸가는 성과로 꼽힐만하다.
반대로 어떤 편법으로든지 부족한 재원이 조달된다면 자칫 동결의 선명한 의도에 오점을 찍는 결과가 될 것이다.
예상보다 방위비가 크게 늘지않은 것이 동결예산을 짜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 당초에는 GNP 6%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1천8백억원 정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으나 3백18억원 증가에 그쳤다. 재작년과 작년의 GNP규모가 추정했던 것보다 작았고 물가 역시 더 안정됐기 때문이다.
석유안정기금에서 1천1백40억원을 댐 공사에 끌어쓴 것과 아파트추첨의 채권입찰제에서 거둬들일 1천억원의 망외수입도 예산동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어쨌든 내년도 정부살림은「동결」의 시험대에 올려져 상당한 시련이 불가피할 것이다.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예외는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그 정도가 심해져 경직적인 분위기를 유발하면 곤란하다.
예산동결에서 우려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그 점이다. 동결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나머지 지금의 행정채널이 더 경직되는 경우가 생겨난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의 기능을 동결시키는 일이나 다름없다.
너무 급한데서 으레 경직이 생겨난다. 20∼30%씩 늘려오던 씀씀이를 금년에 11·8%선으로 억제한 것도 사실 대단한 각오가 뒷받침됐었다. 거기서 이번에는 한푼도 안늘이겠다는 것이니까 상당히 서두르는 셈이고 따라서 경직적인 분위기를 무엇보다 경계해야한다.
너무 서두르면 좋은 점은 안 먹혀들고 부작용만 크게 번져들기 쉽다. 예컨대 충격적인 조치에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있는 터이므로 예산동결도 자칫 좋은 의도는 뒷전이고 우선 「충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기 위해서 예산동결을 결심한 정부가 그것의 수행과정에서 그전보다 더 경직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결과는 「더 큰 정부」가 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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