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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복지-증세 논의에 성역 없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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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정부가 주장해 온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이 드러난 이후 정치권에서 복지-증세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선 유승민 신임 원내대표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대상에) 법인세도 성역이 아니다”고 발언한 이후 증세 논쟁에 불이 붙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우윤근 원내대표가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제외한 복지 분야에선 선별적 복지에 찬성한다”고 언급하면서 복지 지출의 구조조정 논란에 가세했다. 여기다 여야 의원과 경제 전문가들까지 저마다 복지-증세 논쟁에 제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나서는 바람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각에선 여야 간에 ‘선별 복지-법인세 인상’의 빅딜론까지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중구난방(衆口難防)식으로 복지-증세 논쟁이 벌어져선 합리적인 복지 구조조정이나 실효성 있는 증세 방안이 나올 수 없다. 복지와 증세 문제를 섣부른 이념적 논리나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거론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법을 도출하기 어렵다. 더구나 복지와 증세가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돼서는 곤란하다. 복지-증세 문제는 당장 현 세대의 이해와 직결됐을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이해까지 걸려 있는 국가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안을 여야 정치인들이 충분한 숙고와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불쑥불쑥 한마디씩 내던지는 식으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왕 복지-증세 문제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대두된 이상 여야는 이와 관련된 구호성 정치 공세를 중단하고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기 바란다. 그것이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제안한 조세특위든, 아니면 새누리당이 구상하는 별도의 ‘세금-복지 논의기구’든 여야 간 협의기구를 만들어 실질적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여기에서 복지의 우선순위와 조정 방안, 재원 마련 방안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여야 모두 기존의 선입견이나 관성적인 주장을 내려놓고 모든 가능성과 대안을 ‘성역’ 없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자세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여당은 ‘증세 절대 불가’란 성역을 깨고, 야당도 ‘무상급식-무상보육 절대 고수’란 성역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연후에 지속 가능하고 감당할 수 있는 복지의 수준과 지출의 우선순위를 다시 따지고, 그에 필요한 재원을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하란 얘기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고 동의할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한 복지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증세 없는 복지’ 공약에 매달려 성역을 고수하고 있는 점은 안타깝다. 박 대통령은 6일 저출산·고령화대책회의에서 경제활성화를 통한 세수 확보가 우선이고, 여전히 증세는 검토하지 않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래서는 복지-증세 논란을 잠재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야 간의 협의를 진전시키는데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증세 없는 복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복지 구조조정도 어려워지고 복지 재원을 마련할 길도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