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칼국수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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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어느 날, 저녁준비를 하고있는데 『아지매, 칼국수 잡수러 오시래요』라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잖아도 입맛 잃기쉬운 여름철, 구미가 당기는 소리에 귀가 번쩍했다.
이웃 친구가 『네가 좋아하는 것이라서 불렀다』면서 땀을 씻을 사이도 없이 대접 수북이 국수를 담아준다.
세월따라 식성도 많이 변하는 모양인지, 어릴 적에는 어머니가 국수를 밀고 있을라치면 또 국수하느냐면서 투덜거렸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뜨거운 칼국수를 먹으며 어른들은 『어, 시원하다』고 맛있게 몇 그릇씩 비우시면 그 참맛을 몰랐던 내가 이제는 그때의 나의어머니 나이에 머물러서 그런지 자꾸만 그 칼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날콩가루를 조금 넣은 밀가루 반죽을 잘 해서 홍두깨로 밀어 늘리면 되는 것인데, 국수를 만들다가 손님이 오면 조금만 더 밀어 늘리면 한사람분의 양을 더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국수꼬리 구워 먹는 즐거움으로 엄마곁에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면서 말랑한 반죽이 홍두깨의 움직임에 따라 운동모자처럼 되었다가 점점 챙이 넓은 모자가 되어지고, 그러다 평평하게 되면 밀가루를 솔솔 뿌린후 골고루 쓱쓱 문지른 다음 홍두깨로 말아 밀어서 늘리는 것이다.
어느날 솜씨를 내어 칼국수를 만들고 남은 꼬리를 아이들에게 구워 먹으라고 주면서 엄마가 어릴적에 즐겨 먹던 과자라고 했다. 석쇠에 구워서 맛을 보더니 무슨 맛으로 이걸 먹느냐며 거들떠 보질 않았다.
이름도 알수 없는 각종 맛있는 과자로 입맛이 버려진 요즘의 아이들에겐 훗날 그들이 어른이 되면 국수꼬리처럼 구수한 추억거리가 과연 얼마나 될는지 안타까운 마음이다.<경북경산군압량면조영동255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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