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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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푸른빛을 더해가며 점점 높아져 가는 쪽빛 하늘이 가을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것 같다.
나는 여름 내내 폭염 앞에 백기를 든 패자가 되어 꼬박 집에서 하는 일없이 두아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무의미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젠 책장 속에서 여름잠을 자던 책들의 다정스런 벗도 돼주고 아이들 손을 잡고 서서히 영글어가는 가을의 축제에도 참여해야겠다.
그리고 하루쯤은 헌책방 골목을 돌며 진정 책을 사랑하던 이의 손때가 곱게 묻은 고서를 고르며 홍차같은 은은함에 취해 보리라.
과학문명의 범람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는 두아들에게 자연의 무리들과 뒹굴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해마다 가을이면 독서회나 각종 교양강좌 모임이 있지만 여유없는 내생활로는 참여해볼 생각을 못해 봤다.
하지만 꼭 그런 모임이 아니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얼마든지 책과 벗하며 배우고 얻는것이 많은줄 알면서도 이것 역시 착실히 실천에 옮기지 못했었다.
이젠 애들도 어느정도 컸으니 올해부턴 나를 위한 내면적인 시간을 많이 갖도록 해야겠다.
사회라는 한정된 테두리 안에서 땀흘려 일하는 남편을 위해 이 가을 정성이 담긴 한아름의 코스모스로 집안 분위기를 바꾸고 여름철에 잃었던 남편의 식욕을 위해 앞치마를 곱게 두르는 착한 아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한권의 책이라도 더 읽어 아는 것이 많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풍부한 지식과 현명한 사고력을 물려줄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지.
오는 주말쯤에는 가까운 시골로 향하는 교외선을 타고 가을의 내음에 훔뻑 취할수 있는 온가족의 소박한 가을여행을 마련해 보련다. <서울서대문구연희3동334의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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