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對北 카드 가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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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방미활동 중 대북 발언이 이전의 것과 달라져 주목받고 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강경입장에 밀린 盧대통령이 향후 대북정책의 수정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대북정책 방향 선회하나=盧대통령의 대북 언급이 적잖이 변한 것은 확실하다. 그는 지난 12일 "나는 북한을 그렇게 많이 신뢰하지 않는다"(뉴욕 타임스 회견)고 했다.

또 코리아소사이어티 만찬에서 "미국이 53년 전 우리를 돕지 않았으면 저는 지금쯤 (북한)정치범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는, 북한이 듣기 거북한 말까지 꺼냈다.

지난 3월 "북한은 개방 중이며 이미 변하고 있다. 정권안보와 대북지원을 제공하면 핵 야망을 포기할 것"(뉴스위크 회견)이라던 것과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한.미 공동성명 중 "남북 교류와 협력을 북한 핵 문제의 전개상황을 보아가며 추진해 나갈 것"이란 대목도 盧대통령이 먼저 꺼낸 이야기란 점에서 대북정책에 대해 모종의 결심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선자 시절부터 핵 문제 등으로 자신을 괴롭혀온 평양당국에 대한 실망감의 표시라는 시각도 있다.

盧대통령은 특히 15일 방영된 미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 위협이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16일의 방미 결산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는 없으며 우리도 효율적 (협상)카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과의 협상 전략을 바꾸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북한에서 여러 채널을 통해 많은 제안을 해오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묵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북한에 대한 지원과 교류 확대가 한반도 평화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이 같은 지원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카드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뀐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16일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당국대화, 교류.협력의 병행이란 대북정책의 기조는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16일 비료 20만t(6백50억원)의 지원계획을 북한에 통보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문제가 나쁜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은 불가피하다는 데 당국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場의 논리' 일까=서울의 당국자들이 대통령 발언의 진의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운 시점에 정작 미국 현지의 보좌진은 엇박자를 냈다.

공동성명의 대북정책 관련 대목을 놓고 반기문 외교보좌관은 "북핵 문제와 남북 교류가 연계된 것은 아니다"고 했지만 선준영 유엔주재 대사는 "대북 협력은 핵문제에 달렸다"며 연계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盧대통령의 태도변화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데도 문제는 있다. 출입기자단과의 기내간담회에서 "미국에 싫은 소리나 하면 되겠는가"라고 반문한 것처럼 특유의 '場의 논리'일 수도 있다. 귀국후 비판세력의 항의를 받게 될 때 어떤 얘기를 할지 주목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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