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졸업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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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8월31일.
보름달처럼 둥근 달력위의 표시가 눈길을 끈다.
누구의 솜씨인지 직감으로 알아낸 나는 박하향같이 신선한 미소를 지어본다.
말 배울 때도 「엄마」란 말 보다 「아빠」소리를 더 먼저 깨우치던 아이. 지금도 아빠의 일이라면 손수건에서 양말에 이르기까지 아내인 나보다 더 세심히 신경을 써주는 열 두살 짜리 딸아이가 아빠의 졸업식 날짜에다 잊지 않도록 동그라미 표시를 해 놓은것이리라.
2년여 세월을 온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인내하며 손꼽아 기다려 온 그 날인데 설마 잊을 리가….
그리 넉넉지 않은 월급에서 그이의 등록금을 낼 때면 한 달에 열흘씩은 보통 백지로 남던 가계부의 공백을, 망국 일본인들이 재건을 위해 흰죽으로 끼니를 이었다는 재건에 얽힌 미담으로 채우며 옆집 앞집 피서 간다고 들뜰 때 위축되는 마음 독서로 달래던 날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은 그것을 숭배하고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한다고 했는데 불혹에 대학원 문을 두드린 그이가 어떤 부류의 사랍에 속하는지 조차 잘 모르는채 동반자로서 내조를 해왔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강하고 교육을 위해 많은것을 투자하는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그이를 아는 사람들은 그이가 졸업을 하면 보다 나은 직장, 높은 직위로 승진하는줄 알고 있다. 그 때문인지 졸업을 앞두고 기뻐해야 할 그이의 표정이 어둡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이가 약삭빠른 사람인지, 현명한 사람인지, 단순한사람인지 계산해보지 못한 탓인진 몰라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그저 젊은이들 틈에서 좌절하지 않고 결실을 맺어준 일만이 기쁠뿐이다. 딸아이가 정성껏 표시해둔 달력위의 동그라미만 봐도 기쁠뿐이다. <인천시남구주안동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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