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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의 신]스스로 답 찾게 도왔더니 … 특허·실용신안 258건 취득한 제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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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에서 배운 것처럼 하중이 한 쪽으로 몰리면 건물이 쓰러질 수밖에 없어.” 발명 동아리 학생들이 정호근(왼쪽)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토마스 에디슨. 발명왕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도 문제아였다. 수업에 집중을 안 했고, 교사에게 엉뚱한 질문을 해 꾸중 듣는 일도 잦았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그가 세계적인 발명가가 된 데는 어머니 역할이 컸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과학적 재능을 발견한 후 흥미를 이어갈 수 있게 도왔다. 정호근 보성고 과학 교사는 에디슨의 어머니와 닮은 점이 많다. 특히 미래의 발명 꿈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게 비슷하다. 그는 모든 학생이 한국의 에디슨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그들의 잠재력을 발견해 키우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과학적 탐구로 이어갈 수 있게 돕는다는 얘기다.

교사가 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수업 시간만으로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호근 교사가 2000년에 만든 발명 동아리 사이노베이터(SCINOVATOR)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이노베이터는 과학을 의미하는 사이언스(SCIENCE)와 혁신자를 뜻하는 이노베이터(INNOVATOR)를 합성한 단어로 얼핏 보면 평범한 동아리 같지만 수상 실적이 과학영재학교나 과학고만큼 뛰어나다. 지난 15년간 학생발명전시회·과학전람회·창의력올림피아드 등 굵직한 대회에 나가 상을 받은 게 730회가 넘고, 학생들이 출원한 특허와 실용신안이 258건 이상이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집요하게 연구하고 탐구한 결과가 좋게 나왔을 뿐”이라고 했지만 15년간 발명반을 이끌고 있는 그의 노고가 상당부분 들어가 있는 건 분명하다.

 발명 동아리를 만든 건 우연한 계기였다. 정 교사는 대학시절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에 ‘조명 달린 장식장’을 출품해 동상(특허청장상)을 받을 정도였다. 교사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발명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고, 틈틈이 전국교원발명품경진대회 문을 두드렸다. 교사 생활 2년째 되던 해에 선배 교사가 툭 던진 한 마디가 전환점이 됐다. “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라”는 조언이었다. 사이노베이터는 이렇게 탄생했다. 창설 초반에는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 아래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보성고를 대표하는 동아리로 자리매김했다.

 동아리를 만든 건 발명을 좋아해서만은 아니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게 더 컸다. 일주일 중 한 시간 수업으로는 35명이 넘는 반 학생들의 정보를 파악하는 게 어려웠다. 그는 동아리에 참여하는 아이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이 처한 환경이나 고민을 들을 수 있었고, 성적과 관계없이 과학적 재능을 가진 학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이노베이터가 학생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된 동시에 학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기회가 됐다는 거다.

 발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보성고로 모이는 이유가 여기 있다. 2학년 양현민군도 그 중 하나다. 중학교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던 그는 정호근 교사가 이끄는 발명반에서 활동하고 싶어 보성고에 진학했고, 입학 첫해 제26회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에 나가 은상을 받았다. 양군은 “발명반 활동은 과학적 배경지식을 익히고 미래자동차개발연구원이라는 내 꿈에 한 발 더 다가가는 기회가 됐다”며 “동아리에서 쌓은 내공이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할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양군뿐 아니라 현재 30명의 학생들이 정 교사 지도 아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그럴싸한 발명품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발명반을 15년째 이끌고 있지만 사실 동아리 안에서 정 교사의 역할은 크지 않다.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조력자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방향만 제시할 뿐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도울 뿐이다. 실수를 반복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게 귀중한 경험이라는 걸 앞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회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몇 월 며칠에 무슨 대회가 열린다는 내용만 전달하고, 대회 참여 결정부터 예선 통과까지 모든 과정은 전적으로 학생의 몫이다.

 수업도 동아리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 교사보다 학생들이 할 일이 더 많다. 3명씩 조를 이뤄 조별로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게 수업의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주입식 교육보다 학생 스스로 자료를 찾고 연구한 결과를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게 탐구력과 표현력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그의 역할은 학년 초에 과학의 기본이 되는 문제 제기, 가설 설정, 실험을 통한 논증, 결론 도출 등 탐구 방법을 가르치는 것 외에 학생이 발표한 후 오류를 지적하는 게 전부다.

 과학 논술 쓰기와 발명품 아이디어 내기를 과제로 내는 것도 논리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과학 논술 쓰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글로 표현해 보고, 발명품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 그는 “생활 속에 불편함을 느끼고 ‘왜’ 라는 의문을 갖는 것부터가 발명의 시작”이라며 “자신의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고민하는 사이 과학적 사고력이 저절로 커진다”고 말했다.

 학생의 역할이 많다지만 그렇다고 정 교사가 아무런 노력도 안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동아리 지도와 수업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교사 생활 시작 후 10년 동안은 매년 방학을 이용해 해외에 나갔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리는 교구·완구 박람회에도 줄곧 참여했고, 미국·영국·프랑스 등에 있는 웬만한 과학관은 다 둘러봤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뿐만 아니라 매년 전국교원발명품경진대회에도 참여한다. 발명 트렌드를 파악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발명 꿈나무를 위한 그의 노력은 늘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글=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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