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된 아버지 가족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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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납북된 동진호 선원 최종석(60)씨의 딸 우영(35·아래쪽)씨가 어머니와 함께 23일 최씨의 귀환을 바라는 뜻으로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부근의 소나무에 노란 손수건 400장을 매달았다. 파주=김성룡 기자

구름 한 점 없는 가을하늘이 드높게 펼쳐진 2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입구. 소나무 한 그루에 노란 손수건이 하나 둘씩 걸리기 시작했다.

사다리 위에서 손수건 매달기에 여념이 없는 이는 최우영(35.여)씨와 그의 가족들. 최씨는 18년 전 납북된 아버지 최종석(60)씨를 그리는 마음을 담아 400장의 손수건을 준비했고, 어머니와 이모 등 가족 다섯 명이 그를 도왔다.

최씨는 최근 한 일간지에 '이 편지를 북한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님께 바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어 화제가 된 인물. 그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부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아버지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송환을 호소했다. 최씨는 또 "26일은 아버지의 환갑 날인데 북에서라도 이날을 기억해 잔칫상을 차려주면 고맙겠다"고 부친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그는 이날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의 애끓는 마음을 김정일 위원장이 공감해주기를 바란다"며 아버지에 대한 송환 조치를 다시 한 번 촉구했다. 그는 "소원이 이뤄져 아버지가 귀환하신다면 이 손수건들을 보고 가족들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란 손수건 또는 리본을 나무에 매다는 것은 '변함없이 사랑하며, 기다리고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다. 1900년대 초 미국의 한 여성이 출소한 남편을 기다리며 동네 어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어 놓은 일이 잡지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 '노란 손수건'과 팝송 '노란 리본을 늙은 떡갈나무에 묶어 두세요'가 유행하면서 간절한 기다림의 상징이 된 것이다.

최씨가 아버지와 헤어진 때는 고교생이던 1987년. 동진호의 어로장이던 부친은 조업 도중 다른 선원 11명과 함께 북한으로 피랍됐다. 최씨는 그 뒤 10년 동안 아무 소식도 전해듣지 못하다 98년 언론 보도를 통해 아버지가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2년간 그는 탈북자를 만나는 등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수소문한끝에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실태와 아버지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게 됐다. 그러고는 2000년 납북자가족협의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최씨는 "아버지의 신변에 행여 위협이 있을까봐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아버지가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이상 더는 밑으로 내려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앞으로 '햇볕정책의 수혜자이고 싶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고, 통일부 장관을 만나 납북자 문제를 호소하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인권을 내세우며 미전향 장기수를 북송하지만, 납북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정부가 너무 야속했다"며 "결국 피붙이인 내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미전향장기수 북송 방침이 알려지자 "아직 북측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조차 해주지 않고 있다"며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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