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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자는 없다 … 영업이익 21% 감소 ‘맥빠진 빅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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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08면

세계 최대의 레스토랑 체인, 자본주의의 첨병, 각국 물가 수준의 가늠자. 맥도날드는 그냥 햄버거 회사가 아니다. 냉전 종식 후 맥도날드가 모스크바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구소련의 사회주의가 무너진 것을 실감했다. 프랑스에서는 맥도날드가 미국의 문화 패권주의를 상징한다며 갈등이 촉발되기도 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맥도날드의 마케팅·브랜드 전략을 모범 사례로 소개했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빅맥 가격을 기반으로 물가 적정성과 환율을 비교하는 지수를 개발했다. 무엇보다 세계 120여 개국, 3만6000여 매장에서 하루 평균 7000만 명이 빅맥과 프렌치 프라이를 먹고 있다. 맥도날드는 하나의 문화다.

맥도날드, 60년 만의 위기

 그런 맥도날드가 창사 60년 만에 최대 고비를 맞았다. 지난달 23일 맥도날드 미국 본사가 발표한 2014년도 결산에 따르면 4분기 영업이익이 무려 21%나 감소했다. 매출도 전년 대비 0.9% 줄었다. 맥도날드의 매출이 감소한 건 2002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방문객 수는 3.6% 줄었고 최대 시장인 미국에선 4.1%가 감소했다.

  급기야 맥도날드는 지난달 28일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2012년 6월 취임한 맥도날드 최초의 흑인 CEO 돈 톰슨을 사실상 경질하고 영국 출신 스티브 이스터브룩을 새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톰슨은 3년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3월 1일 퇴임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톰슨이 패스트푸드 산업의 지각변동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신용평가사 모닝스타의 R J 하토비 애널리스트는 “소비자 요구가 변화하고 패스트푸드 업계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어오는 시점에 톰슨은 맥도날드만의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혁신 부재가 몰고 온 뼈아픈 결과라는 분석이다.

일본선 플라스틱, 사람 치아 발견 소동
수익 악화와 CEO 교체를 겪는 맥도날드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은 건 맥도날드가 직면한 문제가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맥도날드를 향한 소비자들의 눈길이 달라졌다. 과거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트렌디한 캐주얼 레스토랑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만드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실제로 미국에선 셰이크 색(Shake Shack) 같은 로컬 수제 햄버거 체인과 신선한 재료를 내세운 멕시칸 레스토랑 치폴레(Chipotle)가 최근 급성장했다. 치폴레의 스티븐 엘리스 공동대표는 지난해 투자자 간담회에서 맥도날드를 겨냥해 “전통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은 음식 퀄리티를 희생해 가격을 낮추고 준비 과정을 간소화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해 치폴레의 매출은 19.8% 늘었고 영업이익도 57%나 신장했다.

 맥도날드가 고전하는 곳은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에선 지난해 유통기한이 지난 고기를 납품받아 사과하는 사태가 있었다. 일본의 맥도날드 매장에선 플라스틱 소재와 사람의 치아가 음식에서 발견돼 소동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 세계가 러시아에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자 러시아는 자국 내 맥도날드 매장 440여 곳에 대해 위생상태 조사를 벌였다. 9곳의 매장은 폐쇄됐다.

 문제는 맥도날드의 시련이 이런 일시적인 실수에 그치지 않고 근본적인 영업환경 변화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톰슨 대표는 지난해 “소비자들은 맥도날드 제품 안에 뭐가 들어 있고 재료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문제를 시인했다. 실제로 맥도날드는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미국에서 소비자 의견 듣기 홈페이지 이벤트를 실시했는데, ‘맥도날드 햄버거는 왜 썩지 않나?’ ‘프렌치 프라이는 진짜 감자로 만든 건가?’ ‘고기에 기생충은 없나?’ 같은 질문이 쏟아졌다.

 맥도날드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역으로 맥도날드가 성공 가도를 걸어온 세계 최대 레스토랑 체인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음식평론가부터 노동운동가, 동물권익보호운동가, 반미주의자까지 맥도날드를 비판하면 쉽게 주목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엔 사모펀드 등 투자자들도 맥도날드의 실적 악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맥도날드는 저가에 인력을 착취한다는 노동운동가들의 이념적인 비판은 물리칠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맥도날드에 등을 돌리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988년 문을 연 국내 첫 맥도날드 매장(압구정점).

고급화가 정답 vs 기본으로 돌아가야
맥도날드는 현재 ‘기본으로 돌아가기’와 ‘고급화 전략’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의 주장대로 맥도날드가 고급화하는 것이 정답일까. 고급화에 따른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메뉴를 다양화하면 서비스가 지연되고 프랜차이즈 점주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또 고급화하면 가격이 오른다. 이는 맥도날드의 주고객인 저소득층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에 물러나게 된 톰슨 대표는 소비자들이 직접 토핑을 고를 수 있는 다각화 전략을 추진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의 4개 매장과 호주 일부 지역에선 터치스크린을 통해 빵·토핑 등 22개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런 전략은 맥도날드 초기 CEO 프레드 터너가 작성한 매뉴얼과 상반된다. 매뉴얼에는 ▶한 번에 6개 이상의 패티를 그릴 위에 올려놓고 굽지 말 것 ▶프렌치 프라이는 두께 0.28인치 이하로 만들 것 ▶빅맥·더블치즈버거 등엔 피클을 2개 넣고, 일반버거와 치즈버거에는 1개, 앵거스 시리즈엔 3개를 넣을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전 세계 맥도날드에서 균일하게 요리하라는 지침인 것이다. 맥도날드 측은 터치스크린 시스템 도입에 대해 “소비자가 자신이 먹을 제품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신선한 재료, 간단한 메뉴로 빨리 음식을 내놓는 맥도날드 고유의 영업방식을 극대화하는 게 살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맥도날드의 라이벌인 버거킹의 경우 간단한 메뉴와 빠른 서비스 전략으로 이익 신장을 달성했다. 지난해 3분기 버거킹의 북미지역 매출은 3.6% 늘었다. 같은 기간 메뉴 다양화 등을 추진한 맥도날드의 매출은 3.3% 줄었다. 물론 맥도날드의 매출 규모는 버거킹의 두 배에 달하기 때문에 어느 전략이 옳은지 속단하기는 이르다.

 사실상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판단은 3월에 취임하는 새 CEO 이스터브룩의 몫이다. 그가 어떤 해결책을 들고 나올지가 관심사다. 맥도날드 측은 지난달 28일 CEO 교체를 발표하며 “우리는 심각한 마음으로 경영실적을 높이고 고객 중심 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48세인 이스터브룩은 1993년 회계사 자격으로 맥도날드에 입사했다. 2011년 피자익스프레스 CEO로 옮겼지만 1년도 안 돼 일본 우동 체인 와가마마 대표로 다시 옮겼고 2013년 맥도날드의 최고브랜드책임자(CBO)로 복귀했다. 일각에선 그가 맥도날드의 영국 및 유럽지역 영업을 순조롭게 해낸 데에 기대를 걸고 있다. 2006년 부정적인 이미지 문제로 고생하던 영국 맥도날드 대표로 임명된 뒤 매장 리모델링, 공격적인 홍보정책, 새로운 인턴십 제도 등을 추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8년 북부 유럽지역 대표가 된 뒤엔 매출이 10% 증가하기도 했다. 물론 이스터브룩이 유럽지역 7000개 매장을 경영한 경험이 전 세계 3만6000여 개 매장에서도 재연되리란 보장은 없다. 맥도날드가 계속 내부 인사를 CEO로 임명하는 데 대해 근본적인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새 CEO 어떤 해결책 제시할지 관심
물러나는 톰슨 대표는 “2014년은 맥도날드에 시련의 한 해였고 최소한 올해 상반기까지 어려운 영업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2년 톰슨 대표 취임 후 맥도날드의 주가는 큰 변동이 없었다. 같은 기간 뉴욕증시 활황으로 다우지수가 36%나 올랐는데도 말이다. 또 맥도날드의 2015년도 자본투자 예상액인 20억 달러는 최근 들어 가장 낮은 액수다. 이른바 긴축경영에 들어갈 채비다. 새로 문을 여는 점포 수도 지난해 1300개에서 줄어든 10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한국맥도날드 측은 글로벌 맥도날드의 실적 부진이 한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한국맥도날드 김기화 이사는 “맥도날드는 각 나라의 시장이 철저하게 지역화(localize)돼 있어 미국 본사의 실적 부진은 물론 이웃 중국과 일본에서 파동이 일어났다 해도 한국 시장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맥도날드는 지난해 말 기준 총 4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계속 새로운 점포를 늘려가는 추세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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