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기와 공습경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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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5월에 일어난 중공민항기 피납사건의 주모자들에 대한 재판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이때, 중공군 조종사가 미그-21을 몰고 또 한국으로 귀순해 옴으로써 한국과 중공간에는 또 하나의 현안문제가 추가되었다.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바로 작년10월 오형근이라는 중공군조종사가 미그-19를 몰고 우리땅으로 넘어온데 이어 이번 사건이 일어났으니 1년이 채 못되는 기간에 2대의 미그기가 넘어오고, 거기다가 민항기사건까지 합치면 한국이「망명정거장」같이 되어간다는 인상도 받게된다.
이건 어떻게 보면 우리로서는 희비가 엇갈리는 현상이기도하다.
자유를 찾아 망명할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은 한국이 인도주의원칙과 자유의 이념을 신봉하고 실천하는 나라라고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유를 잦아 필사의 탈출을 할때 우선 한국땅을 기착지로 잡는다.
작년10월에 넘어온 오형근조종사와 기체를 처리할때 한국은 국제관례와 인도주의의 원칙에 따라서 조종사는 그의 의사대로 ??으로 보내고 기체는 중공으로부터 어떤 의사표시가 있을 때를 기다려 그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공은 조종사나 기체의 송환을 요구해오지 않았다. 7개월후에 일어난 중공민항기 사건때 중공당국이 보인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반응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이번에도 중공이 작년10월처럼 침묵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지난 5월처럼 기체와 승무원의 송환을 요구하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것인지 아직은 미지수지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중공의 요구가 어떤 것이건, 그리고 요구의 강도가 어떠하건 간에 우리로서는 과거처럼 국제관례와 인도주의원칙의 선에서 문제를 처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정치적인 피난민에 대한 구조와 보호의 원칙을 지키고, 우리의 영토주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함에 있어서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바라는 우리의 외교적인 입장이 과도하게 개입 돠어서는 안될 줄로 안다.
중공민항기 사건때 중공에서 공식대표단이 한국에 오고, 한국과 중공간에 처음으로 합의각서가 서명되고, 중공대표들과 민항기승객들을 융숭하게 대접을 했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한국과 중공간에 접촉의 문이 열리고 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기정사실이기나 한 것 같은 인상을 국민들의 머리속에 심어놓았다.
그러나 중공은 민항기 사건의 처리와 관계개선은 전혀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엔전문기구회의를 주최하면서 한국대표들의 중공입국을 부당하게, 그리고 거듭 거부한데서도 우리의 기대가 아전인수격이요 근거없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런 교훈을 살려서 이번 미그-21의 조종사와 기체를 처리하는데 어떤 파도한 외교적인 기대가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땅에 착륙만 하면 바로 그리고 자동적으로 대만행이 보장된다는 인식을 주는 사건처리도 재고되어야 한다. 조종사의 신병인도는 망명동기와 진의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하면서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일요일 미그-21이 넘어올때 휴전후 처음으로 실제공습경보가 울려 무더위에 늘어지고 휴가지에서 바캉스를 즐기던 우리들은 17분동안이나마 긴박한 상황을 체험했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었어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눈뜨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문제의 전투기가 날아오는 방향, 날아오는 물체가 여러 대가 아니라 한대였다는 점 등을 고려할때 실제공습경보로 많은 사람들을 결과적으로 놀라게 한 것이 불가피했었는지 후일의 참고를 위해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안보태세는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영토를 침범하는 정체불명의 물체를 제때에 레이다로 잡고, 우리공군기들이 즉각 출격하고, 동시에 공습경보가 울린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리고 문체의 「적기」가 귀순하는 중공기로 밝혀져 즉각 공습경보가 해제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공습경보나 경계경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둔감해질 걱정이 전혀 없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공습경보 발령의 어느 한대목에라도 개선할 점이 없을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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