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김윤규 복귀' 수용 어려워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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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왼쪽)이 지난 7월 북한 원산에서 면담을 마친 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부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이 20일 "현대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초강경 입장을 밝힘에 따라 현대그룹의 대북 사업이 기로에 서게 됐다. 현대 측은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을 복귀시키라는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미 1조5000억원이 들어간 대북사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1일로 취임 2주년을 맞는 현정은 현대 회장으로선 대북 사업과 관련한 최대의 고비에 부닥친 셈이다.

◆ 현대의 입장=현대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매우 당혹스럽다. 북측과 시간을 갖고 대화하겠다. 남북 경협사업이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란다"고만 짤막하게 밝혔다.

현대그룹의 입장에선 김 전 부회장의 축출을 '종기를 떼어내는 수술'이라고 표현한 만큼 그를 복귀시키라는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룹의 간판인 대북 사업을 내버려 둘 수도 없다. 따라서 현대는 북한의 명분을 일부 살려주면서 관계 회복을 꾀하든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북측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든지 할 수밖에 없다.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다.

고려대 남성욱(북한학과) 교수는 "북측은 이번 메시지를 통해 북의 뜻에 반하는 남북 경협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한편 경협 파트너를 바꿔 이익을 챙기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북측의 이런 입장은 한마디로 억지"라며 "북한이 다른 기업들을 찾아보다 안 되면 다시 현대와의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대북 사업은=현대그룹과 북한 간에 벌여온 사업은 개성공단 사업과 개성.금강산.백두산 등 3대 관광 사업이 핵심이다. 이 가운데 개성공단 사업은 토지공사가 시행 주체이고 현대아산은 시공사에 그치는 데다 이미 시범단지 입주가 시작됐기 때문에 별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도 이번 담화에서 개성공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가 주관하는 금강산 관광과 현대가 북측과 합의한 개성.백두산 관광 등 3대 관광사업은 차질이 우려된다.

북측은 개성관광에 대해 "현대와는 도저히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기업이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성관광을 추진했던 롯데관광도 최근에는 여론을 의식해 주춤한 상태다. 롯데관광 관계자는 "현대와 북한 간에 입장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끼어들 순 없다"고 말했다. 아직 답사도 못한 백두산 관광은 개성관광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하다.

금강산 관광에 대해서도 북측은 이번에 전면 중단 가능성을 시사했다. 금강산 관광은 이미 지난달부터 북측 통보에 의해 관광객 규모가 종전의 절반 수준으로 제한된 상태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중요한 달러 수입원인데다 북측이 얼마 전 정동영 장관에게 "금강산 관광 중단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적도 있어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현 상황에서 유일한 해법은 정부의 중재라고 남북 경협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대가 개성관광 독점권의 이유로 주장하는 '7대 경협 합의서'에는 분쟁이 30일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남북한 3명씩 참여한 조정위원회를 구성, 해결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게 돼 있다는 것이다.

이영렬.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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