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증오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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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에 유신 독재의 망령을 부활시킨 유신 잔당'. 열린우리당의 논평 제목이다. 이런 대목도 있다. '멀쩡한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는 한나라당의 가증스러운 저주와 독기 품은 호들갑은 유신의 꿈에서 덜 깬 유신 잔당의 잠꼬대일 뿐이다'.

한나라당도 안 진다. '강정구에 올인 하는 노무현 정권은 정체를 드러내라'는 제목의 논평에는 "당신들 정권의 치어리더 강정구만이 '대한민국 인권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당신들을 격려하고 있다"는 대목이 있다.

지금 여의도에선 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 상대에 대한 경멸과 증오만 흘러넘친다. 한나라당은 장외투쟁도 불사할 태세다. 이 바람에 적절한 수사 지휘였는가를 따져보는 법무장관과 검찰 사이의 논쟁은 실종됐다.

이 같은 양측의 감정 과잉과 오버에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한나라당을 향해 "서로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연정(聯政)을 하자"고 집요하게 요구하던 게 며칠 전이다. 그러나 이젠 '상종 못할 수구 꼴통'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10.26 재선거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재결집을 노린 확전"이라고 공격한다.

한나라당의 초강경 대응은 박근혜 대표가 앞장서고 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으로 뜨니까 위기의식에서 세게 나온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18일 "국민과 함께 구국(救國)운동에 나서겠다"며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에 한나라당 의원은 5명 중 3명만 참석했다. 정작 사실관계를 냉정하게 따질 수 있는 토론의 장은 무시한 셈이다.

여의도가 30년 전으로 돌아간 사이에 기업들은 북한에 학용품 공장을 지어주고 있다.

박승희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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