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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애덤 스미스가 보내온 e메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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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께.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인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국민 개개인의 ‘잘살겠다’는 의욕이 국가의 부를 이룬다는 제 이론을 단기간에 명확히 실증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한국인들이 그동안 제게 보여주신 큰 관심입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중심가에 세워진 제 동상 앞에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인증샷’을 찍어 가셨습니다. 다른 나라 여행객과 비교해 볼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동상에 새겨진 제 이름을 본 한국인들은 “아,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이라며 저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언급하십니다. 이 점에서도 세계 최고입니다.

 그런데 제가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 딱 두 개만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학생 때 치러야 하는 국가적 상식 시험 같은 게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짐작해 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 책은 읽지 않고 그냥 ‘애덤 스미스=국부론=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순 공식만 외우는 분이 많은 것 같다는 의구심까지 갖게 됩니다. 최근에는 이런 의심을 더 키우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한국의 조세 논란입니다. 연말정산으로 불거진 근로소득세 징수 문제,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듣기로 ‘자유시장’에 대한 소신으로 무장한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제게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제가 책에 써 놓은 조세 4원칙은 안 읽었거나 기억을 못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국부론』의 끝에서 둘째 장에 쓰여 있어 사실 읽기가 조금 어렵기는 합니다.

 저는 책에 간단명료하게 원칙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상기시켜 드리자면 ①공평해야 한다 ②(내역이) 명확해야 한다 ③내기 편해야 한다 ④징수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연말정산 사태를 보면 직장인만 더 큰 부담을 지게 됐으니 공평하지가 않습니다. 바뀐 내용도 복잡해 납세자들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서류 작성의 불편함도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논란 때문에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도 커 보입니다. 네 원칙 중 한 개도 지켜진 게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 거의 모든 나라가 재정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 있는 조세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관료·정치인들에게 애정을 담아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국인 모두의 건승을 기원하며, 애덤 스미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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