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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국제시장'에 미국 사회 둘로 갈라져

중앙일보

입력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놓고 미국 내에서도 좌우 이념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진보 매체는 ‘전쟁 미화’라고 비판한 반면, 보수 언론은 ‘최고의 전쟁 영화’라고 치켜세웠다.

영화는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소속 저격수로 ‘전설’로 불리는 크리스 카일(1974~2013)의 일대기를 그렸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저격수가 아닌 인간 카일을 그렸다”며 “그와 그의 가족이 치른 희생에 대해 생각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화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 대 보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진보 언론에선 “군국주의 시각의 위험한 영화”(허핑턴포스트), “영화로 보는 (보수 성향) 폭스뉴스”(살롱닷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반면 보수 매체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카일을 보내주신 걸 감사하게 되는 수작”(폭스뉴스 라디오)이라고 옹호했다. 산업화 세대 일대기를 다뤘으나 우파 영화라는 비판을 받은 영화 ‘국제시장’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논란에도 흥행 가도를 달리는 점도 비슷하다. ‘국제시장’은 27일 현재 1200만명(영화진흥위 집계)을 넘겼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도 이날 2억40만 달러(약2171억원)의 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중장년층을 극장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닮은 꼴이다. 2004년 대선 때 민주당 주자였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26일 한 방송에서 “이 영화를 보려고 줄 선 이들은 (미 보수 성향 단체)티파티 같다”고 했다가 보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영화를 안 보고 했던 말”이라고 물러섰다.

영화를 통해 공화당 측을 비판해온 진보 성향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는 트위터에 “등 뒤에서 총을 쏘는 저격수는 겁쟁이일 뿐 영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감독 겸 배우 세스 로건도 “이 영화를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독일인 저격수가 (미국 등) 연합군을 저격하는 장면이 떠오른다”는 트윗을 올렸다.

보수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뉴트 깅그리치(공화당) 전 하원의장은 트위터에 “무어 감독이 몇 주간 이슬람국가(IS)와 함께 지내보길 바란다. 크리스 카일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미시건주의 한 스테이크 식당 주인은 “무어와 로건은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간판을 걸었다. 이스트우드 감독이2012년 대선에서 밋 롬니 후보를 공개 지지한 것도 영화를 둘러싼 보혁 논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뉴욕 옵저버는 27일자 “좌파는 왜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증오하는가”라는 글에서 “미국의 진보층은 이라크전쟁을 겪으며 전쟁을 무조건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악한 자는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며 진보 좌파 역시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싸운 전쟁 영웅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응징해야 마땅한 악한 세력”의 예로 김정은을 언급하며 “군을 배 불리기 위해 인민의 배를 곯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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