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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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온갖 물질문명의 발달이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좀먹는다는 아이러니가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에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개선은커녕 점차 악화일로를 치닫고만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강은 물론이오, 낙동강 금강 형산강 섬진강 만경강 등 5대강이 폐수와 생활하수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우리의 경각심을 환기시킨다.
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이들 5대강은 주변에 자리잡 있는 공단의 폐수가 그대로 유인돼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크롬·카드뮴·수은·납·아연·구리 등의 함량이 사람의 건강보호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배를 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중앙일보 7월20일자)
크롬은 인체에 접촉되면 그 부위가 짓무르는 궤양을 일으키고 호흡기를 통해 체내에 흡입되면 폐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카드뮴은 수중의 물고기를 기형으로 뒤틀리게 할만큼 독성이 강하고, 일찌기 일본에서는 이른바 「이따이 이따이」 병의 원인으로 유명해진 치명적인 독소다.
이밖에도 각종 중금속이 체내에 쌓이면 생리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유발하고 종내는 생명마저 위협하는 유해물질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해독은 당대뿐만 아니라 후세에까지 불치의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같이 오염된 강물은 식수나 농작물 등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결국 인체로 이전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장폐수나 생활하수 이외에도 각종 농약과 화학비료의 공해요소까지 가중되면 인체가 견뎌내야 하는 중금속 공해는 각 부문별로 내놓은 오염치보다 훨씬 높으리란 추측은 어렵지 않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도하며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 부가결의 요소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강이 이렇게 중금속에 오염돼 있다는 것은 결국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물의 오염은 인체뿐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초래하게 된다. 이미 우리는 오래 전에 몸이 뒤틀린 기형의 물고기를 우리 강물에서 보았고, 가끔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이 떠내려가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해 오고 있지 않은가.
생태계의 파괴는 몇 가지 생물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얽혀 있는 생태계는 하찮은 한 종류의 생물의 멸종이 연쇄적인 영향을 초래하고, 결국은 인류의 생명까지도 위협하게 된다는 생물학자들의 ?고는 이미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먹고 숨쉬는 환경의 오염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환경을 오염으로부터 구출할 책임은 바로 환경을 파괴한 인간에게만 있다.
환경을 희생시키고 보호하자는 호소가 계속 외면 당한다면 죽어가는 우리의 산하를 살려 제기능을 회복시키는 일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죽어가는 강을 살리는 일은 일조일석에 되지않는다. 런던 시민의 시궁창이 돼버렸던 템즈강에서 멸종됐던 연어가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1백50년의 세월이 걸렸고 그것은 30년 동안에 걸친 노력의 결과였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제정한 환경보전법이 엄연히 존재하면서도 유명무실한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정부와 기업이 모두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공해물질 배출업소는 폐기물 정화설비를 갖추도록 돼있는데도 아직도 대기와 강이 오염으로 시달리고 있음은 정부와 기업의 무성의를 탓할 수밖에 없다.
강은 상류에서 한점의 물방울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강의 오염을 막는 일도 상류에서부터 차근차근히 시작돼야만 한다. 너무 늦기 전에 단 하나뿐인 자연과 생명을 보전하는 일을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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