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었을 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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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군정이 계속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폴란드 자유노조지도자 「레흐·바웬사」가 19개월간 계속돼온 계엄령해제조치를 두고 빈정댄 말이다. 외견상 군정은 끝났지만 그대신 계엄령치하와 똑같은 효과를 갖는 법률들이 무더기로 마련돼 국민들의 생활을 규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계엄령해제에 앞서 이틀 동안 열렸던 폴란드의회는 가장 먼저 헌법을 개정, 비상사태조항을 삽입했다.
「사회·경제적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 계엄령과 똑같은 효과를갖는 권한을 갖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 폴란드헌법에는 「외환의 경우」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었지만 「내환」에 대비한 조항은 없었다.
이같은 헌법개정과 아울러 85년까지의 경과법으로서 사회·경제위기에 대비한 특별법이 마련되고 형법·노조법·학사법 등 여러가지 법률도 「안보우선」으로 보완됐다. 이를테면 개정된 형법의 경우 불법화된 단체에 소속되거나 그활동을 한사람은 3년 징역형을 받도록 돼있는데 이는 솔리다르노시치(자유노조)라든가, 해산돼 없어진 작가동맹·예술가동맹 등을 계속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또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교직자들이「사회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당국이 해임할 수있고 학생들은 제적할 수 있도록 학사관계법도 보완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지금까지는 명목상이나마 합법적이었던 노조활동·학생운동·예술가들의 단체활동 등이 불법화됐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폴란드의 지식등들은 계엄령 해제가 실상은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은 「화장」행위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있다.
계엄령해제조치의 핵심은 아무래도 81년12월의 계엄령선포 이래 뒷전으로 밀려났던 공산당의 활동을 다시 강화하는데 폴란드 위정자들이 주력하게되리란 점이다.
아직 계엄령선포 이전과 같은 수준은 못되지만 군정종식과 함께 해체된 구국군사평의회를 대신해당이 전면에 나서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전에 3백15만명이던 당원수가 현재는 2백33만명으로 줄었고 그것도 젊은 당원들이 대거탈당, 30세 이하 당원은 11%밖에 되지 않는것으로 미루어 제대로 기능을 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보이체흐·야루젤스키」장군개인의 권력기반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가 환갑을 맞은 지난 6일엔 소련의「레닌」훈장을 받는 등 크렘린의 신임도 재확인된 셈이다.
「야루젤스키」장군이 지난 30개월간 국내의 자유화운동세력을 성공적으로 억압하면서 함께 벌여온 권력기반 강화작업이 일단 성공한 것이다.
「야루젤스키」치하에서 자유화 운등이 억압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변의 다른 공산국들에 비하면 폴란드는 아직도 자유화의 숨결이 명맥을 유지하고있는 유일한 나라다. 갖가지 규제법률들이 보완되기는 했지만 21일의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들 중에는 농민의 토지사유권을 강화해주는 것들도 포함돼있다.
계엄령이 실시되기전 거의 1년반 동안 폴란드국민들은 자유노조활동을 통해 거의 제한이 없었을 정도의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 이런 자유에 익숙해진 폴란드 국민들이기 때문에 다른 동?국가들에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각종 규제들에도 반발하고있다.
56년, 70년, 80년 3차례의 노동운동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민주화의 바람에 접해온 폴란드국민들의 자유정신은 설령 갖가지 규제의 굴레가 죄어지더라도 계속 탈출구를 모색할 것임에 틀림없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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