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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발전에 크나큰 발자취|제1차 위인현창 사업대상 57인의 공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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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86년까지 민족문화발전에 큰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유적과 유물을 복원·정리하는 위인 현창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1차로 현창될 「위인 57인」은 어떤 분들인가. 그업적을 간추렸다.

<문학·언어>
▲설총=신라 경덕왕때의 학자. 경주설씨 시조. 원효대사의 아들.
한자에 토를 다는 방법으로 만든 사독를 집대성했다.
▲대구화상=신라때 승. 진성여왕2년 (888년) 각간 위홍과 함께 향가집「삼대목」을 엮었다.
▲충담사=신라때 승. 향가인「안민가」를 지었다. 「찬기파랑가」와 함께 『삼국유사』에 실려 전한다.
▲광덕=신라 문무왕때 승. 향가인「원왕생가」는 광덕의 처가 지었다고전하나 광덕의 작이라는 설도 있다.
▲득오곡=신라 효소왕때의 화랑. 득오라고도한다.
삼국통일의 공혼을세운죽지랑의 문도로, 죽지낭의 죽음을 애도해 향가「모죽지랑가」를 지었다.
▲월명=신라때 상. 경덕왕19년(760년) 4월에 두개의 해가 10여일동안 함께뜨자 왕의 부름을 받고 이일괴를 없애기 위해 향가체인 「두솔가」를 지어 읊으며 석양하니 괴변이 없어졌다한다.
▲최치원=신라때 학자. 경주최씨시조. 자는 고운·해운.
헌강왕5년(879년) 황소의 난때 그가 쓴 「토황소격문」은 명문으로 알려졌다.
▲무왕=백제30대왕. 이름은 봉, 별명은 서동. 신라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의 염문을 쓴 향가 「서동요」는 무왕이 지었다.
▲정숙=고려때 문인. 호는 과정. 벼슬은 음보로 내시낭중에 이르렀다.
유배중 연군의 정을 읊은 「정과형곡」이 유명하다.
▲이규보=고려때 문장가. 자는 춘경,호는백운거사. 벼슬에 임명될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로 유명하다. 몽고군의 침입을 「진정표」로써 적퇴한 명문장가이다.
▲김부식=고려때 학자. 자는 입지,호는 뇌천. 숙종때 문과에 급제. 1145년 현존하는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 50권의 편찬을 끝냈다.
▲일연=고려때 승. 일연은 자다.
우리나라 고대의 비화와 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특히 희귀한 향가를 비롯하여 불교관계기사를 수록한 『삼국유사』가 바로 그의 저서다.
▲세종대왕=조선의 제4대왕. 이름은 도, 자는원정.훈민정음28자를 제정하여 반포하는 한편 정음청을 두고 유교전적·음운서등의 국문출간을 담당케했으며 학문장려에 힘썼다.
▲김시습=조선시대 단종생육신의 한사람. 자는 열경, 호는 매월초· 동봉.
한문소설 『금오신화』 『매월당집』 『십현담요해』등의 저서가 있다.
▲정철=조선시대 시인. 자는 계함,호는 송강. 1580년(선조 13년)강원도관찰사로 등용, 시인으로서 그의 천재적 재질을 나타낸 「관동별곡」을 지었다.
▲윤선도=조선시대 시인. 자는 약이, 호는 고산·해옹.
「오우가」「산중신곡」「어부사시사」등 그가 지은 시가는 우리말의 새로운 뜻을 창조하여 활용한 서정적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박인노=조선시대 시인. 자는 덕옹,호는 노계·무하옹.
1598년 왜군이 물러날때 사졸들의 노고를 위로하기위해 「태평사」를 지었다.
▲허균=조선시대 소설가. 자는 단보,호는 교산·황소·백월거사.
1597년 문과중시에 장원, 이듬해 황해도도사가 되었다. 사회제도의 모순을 비판한 그의 소설 「홍길동편」은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으로 꼽힌다.
▲김만중=조선시대 소설가. 자는 중숙, 호는서포.
1665년 (현종6년)정시문료에 장원. 남해유배때 쓴 「구운몽」 은 그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전문을 한글로 집필한것.

<과학·기술>
▲강고내미=신라경덕왕때 금속공예가. 분황사의 기사여래상을 주조했다. 이 동불상은 무게가 30만6천7백근이나되는 거대한것.
▲최무선=고러말의 무신. 화약과 화기를 제조한 발명가. 원으로부터 염초제조법을 배우고 스스로 염초추출법을 개발했으며 화용도감을 설치, 화포·화전등 화기를 제조했다.
▲장영실=조선 세종때 과학기술자. 각종 천문기기를 제작했다. 동래현의 관로출신으로 제련·축성·농기구·무기수리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우량계인 측우기등을 만들었다.
▲이장손=조선 선조때의 발명가. 원래 화포장으로 임진왜란때 비격진천전포를 발명했다.
▲허준=조선 관조때의 한의학자. 전의로서 왕실의 진료에·큰공을 세웠으며 의학백과사전인 「동의보감」25권을 저술했다.
▲홍대용=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 지구는 하루1전한다는 지구자전논을 주장했다.
▲김정호=조선시대 말기의 지리학자. 철종때는 최고의 과학적 실측지도인 「대동여지전도」·「해좌전도」·「지구전후도」를 판각, 간행했다.

<음악>
▲왕산악=고구려의 국상. 양원왕8년 (552년) 에 진나라에서 칠현금을 보냈는데 이것을 연주할 줄 몰라 왕산악이 이를 개조, 1백여 악극을 지었다.
▲우륵=가야국성열성(성열성) 사람으로 뒤에 신라로간 악사. 가실왕의 명으로 쟁을 본떠 12현금, 곧가야금을 만들고 지명에서 발생한 12극을 지었음.
▲백결=거문고의 명수. 섣달그믐날 떡방아 대신에 아내에게 들려준 대악으로 특히 유명하다.
▲박연=조선 세종때의 음악가. 세종9년에 편경12매를 제작했다. 조정의 조회때 사용하던 향악을 폐하고 아악의 사용을 건의, 실행했다.

<사상>
▲원광=신라의 승려. 진한출신. 25세때 진나라에 유학, 경·율·논을 연구하고 수·오나라에서 연구·강의도했다. 600년에 귀국, 불교를 널리펴고 귀산·추항에게 「세속오계」를 줬는데 이는 화랑도의 근본사상이 됐다.
▲원효=신라의 고승. 설종의 아버지. 648년 승려가 돼 황룡사에 들어갔다.
분황사에 있으면서 통불교 (원효종)를 체장, 불교보급에 힘썼다. 불교사상의 종합과 실천에 노력한 정토교의선구.
▲이이=조선중기의 대학자. 호는율곡.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9세에 금강산에 입산, 불서를 연구하다가 23세때 이황을 찾아 유학에 전심했다. 조선유학계의 이황과 쌍벽을 이루며 기호학파를 형성. 장구의 분석적 해설보다 근본원리를 종합적으로 통찰하는 연구방법을 썼다.
▲이황=조선중기의 학자. 호는 퇴계.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로, 성을 기본으로 일생동안 경을 실천하고 면밀히 조목을 따져 깊이 통찰하는 학문자세를 확립했다.
▲최제우=조선말기 동학의 창시자. 호는 빙운. 유불선3교를 기독교적인 영향과 민간신앙 위에 융합, 시천주의 사상을 핵심으로 한 인내천의 완성, 동학을 창시했다.
▲휴정=조선 선조때 승군장. 호는서산. 1592년 임진왜난때 왕명으로 전국에 격문을 돌려 성병1천5백명을 규합, 그총수가 됐다. 조선불교의 고승으로 선종에 교종을 포섭함으로써 이후 조선불교는 선종인 조계종므로 일원화됐고, 유·불·도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고 하여 삼치통합론의 기원을 이룩했다.
▲추정=조선 선조때의 승려. 승호는 사명. 묘향산에서 휴정의 법을 이어 받고 금강산등지에서 도를 닦았다. 1604년 국서를 갖고 일본에 건너가 덕천가강을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3천5백명을 데려왔다.
▲처영=조선 선조때 승려. 서산대사의 제자. 임진왜란때 전라도에서 승병을 일으켜 전공이 많았다.
▲이익=조선영조때 실학자. 호는 성호. 형 연이 당쟁으로 희생되자 벼슬을 버리고 안산 첨성촌에 머물러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 실학자의 중조가 됐다.
▲정약용=조선 정상때 대학자. 호는 다산. 1801년 천주교 박해인 신서사옥때 형제및 매부 이승훈과 함께 장협로 유배된뒤 다시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유배됐다. 그의 5백8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는 「정다산전서」또는 「여유당전집」으로 총망라돼있다.

<미술>
▲다리=백재의 공예가.
무령왕능에서 출토된 팔찌에 다리작이라는 명문이 있다.
▲아비지=백제때 공장. 자장률사가 위룡사에 9층탑을 세울때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신라에 가서 탑을 완성하였다.
▲솔거=신라때 화가. 진흥왕때 황룡사 벽예 그린「노송도」에 새들이 앉으려다 부딪쳐 떨어졌다고 한다.
「동사유고」에 의하면 꿈속에서 단군에게서 신단을 받았다는 것. 이에 꿈속에서 본 단군의 화상을 1천폭에 가깝게 그렸다고 한다.
▲김생=신라의 명필. 일생을 바쳐 필법을 닦아 예서·행초서를 따를사람이 없었다. 고려사신 홍관이 송나라에 갈때 김생의 글씨를 보이자, 왕우군(왕의지)에 비할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
▲양지=신라선덕여왕때 승. 영묘사의 「장륙삼전·천왕상」및 전탑의 기와, 천왕사탑 아래있는 「팔부신장」, 법림사의 「주불삼전」·「좌우금강신」이 모두 양지가 그린 소상이다.
▲김대성=신라경덕왕때 국상. 건축가·조각가. 751년(경덕왕10년) 부모의 장수와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불국사·석불사·장수사등을 창건하여 천재적인 기술과 솜씨를 발휘하고 석굴암의 설계를 완성하였다.
▲이령=고려중기의 화가. 인종과 의종의 총애를 받고 내각그림에 관한 모든일을 주재했다. 송나라에 갔을때 휘제의 부탁으로 「위성강도」를 그려 찬탄과 아울러 후한 상을 받았다.
▲안견=조선초의 화가. 자는 가도·득수, 호는 현동자·주경. 안평대군과 가까이 지내면서 대군이 꿈에서 보았다는 「세종의 들놀이」 (몽유도원도)모습을 그린것은 널리 알려진 일.
▲정환=조선시대 화가. 자는 원백, 호는 겸재·난곡. 약관에 김창집의 천거로 도화서 재원이 되고 뒤에 현감에 이르렀다.
한국산수화의 독자적인 특징을 살린 산수사생 진경화로 전환, 여행을 즐겨 금강산등 전국명산을 찾아다니며 진경산수를 그렸다.
▲김홍도=조선시대화가. 자는 사능, 호는 단원·단구·서호·고면거사. 연풍현감을 지냈다. 정조때는 화원으로 뽑혀 그림한폭을 올릴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신윤복=조선시대 화가. 자는 입부, 호는 혜원. 화원으로 벼슬은 첨정에 올랐다. 시정촌락의 풍속도, 특히 기녀·무속·주점을 다룬 풍속화가로 현실묘사에 충실했다.
▲김정희=조선사대 고증학자·금석학자·서예가. 자는 원춘, 호는 완당·추사·위당·시암·노과등. 24세때 아버지(김노예·이조판서)를 따라 연경에 가서 당세의 거유로 명성을 떨치던 완원 옹방강과 친하게지냈다.
제주도 북청에서 유배생활13년. 금석·도서·시문·전례지학·묵화에 뛰어났고 서법도 독창적인 추사체를 이룩한 명필이다.

<무용>
▲미마지=백제때 무용가. 오나라에 들어가 기악무를 배우고 무왕13년(612년) 일본에 귀화, 사꾸라이(앵정)에 머무르면서 소년들에게 기무를 가르쳤다.
▲만덕=신라때 무용가. 벼술은 대사. 진흥왕13년(552년)에 계고·법지와함께 우륵에게서 춤을 배웠다. 가야금을 배운 계고와 노래를 배운 법지와 어전에서 발표회를 갖고 찬사를 받았다.
▲혜강왕=신라 49대임금(재위875∼886년). 성은 김, 이름은 정. 왕위에 오르자 문치에 치중. 재위중 처용무를 크게 유행시켰다.
▲화랑=신라시대에 있었던 청소년의 민간수양단체 또 그단체의 중심인물을 이른다.
이들은 가무오락·심신단련·명산대천의 순레·민정시찰·유사봉공등이며 효제충신을 지도이념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공로가 컸다.
▲효명세자=조선시대 순조의 세자. 이름은 ,호자는 덕인, 호는 경헌. 「춘앵무」등을 창작, 전통궁중무용발전에 공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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