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인의 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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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민족문화 발전에 큰 발자취를남긴 인물들의 유적과 유물들을 복원·정리하기 위한 위인현창사업이 정부에서 추진되고 있다.
그 사업은 86년까지 우리 민족문화사상 뚜렷한 업적을 남긴 ??적인 인물들에 대한 기념관과 동상, 공적비등을 건립하는데 주안을 두고있다.·
그에따라 벌써 음악무용·미술·문학언어·사상·과학기술등 5개분야57명의 현창대상 인물이 선정되어 그들에 대한 자료수집에 나서고있다.
그러나 이같은 사업의 추진상황을 보면서 몇가지 아쉬움과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사업자체에 대한 부정은 아니지만 사업의 추진과 준비과정에서 마땅히 거쳐야할 전문적 자문과 공개적 토의과정이 없었다는데 대한 아쉬움이다.
우선 현창의 대상으로 선정된 인물이 잘 선정되고 안됐는가를 따지기에 앞서 그 인물선정이 누구에 의해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공부는 분과별 전문위원회를 발족 시켰다고는 하나 그 위원회의 구성을 밝히지 않고 있다. 과연 그 위원회가 그런 일을 책임있게 감당할 수있는가에 대한 국민의 납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데 주의해야한다.
우리와 같이 역사기록이나 업적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처지에서, 또 지역성과 혈연관계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사회에서 현창될 위인을 선정하는 작업은 절대로 공정무사하다는 보장이 없으면 안된다.
지난날 사륙신 논의에서 보았던 불쾌한 소동들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다.
이번 선정된 인물을 잠깐 훑어보더라도 과연 제대로 선정되었는가, 더 충실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10명의 사상가들 가운데 의상·승낭·원측·지눌 등이 빠지고 결코 사상가로 볼 수 없는 인물들이 일부 끼여 있는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선인들을 깍아내리거나 헐뜯을 의도는 추호도 없지만 문화발전에 공헌한 인물과 국난극복의 인물을 혼동하는 잘못은 없어야할 줄 믿는다.
또 사업의 졸속을 피하기 위해 보다 신중한 사업추진을 권하고 싶다.
문공부는 연말까지 자료조사를 끝내고 내년 중에 작업에 착수한다고 하지만 그같은 일사불란한 사업추진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겠다.
인물선정자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 더러 그들이 남긴 자료면의 충실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작업을 추진해서 기계적으로 일을 마무리짓는 일은 없어야겠다.
또 문공부는 이사업을 민간주도로 추진하기 위해 사업비도 경제계를 비롯한 민간인의 성금으로할 계획이지만 거기에 따르는 부협화와 잡음을 미리 계산해야할 것이다.
민간인들이 자발적으로 문화사업에투자할수 있는 법적· 제도적 여건조성은 필요한 일이로되 억지로 떠맡겨 일을 추진함으로써 좋은 사업에 ??를 남기는 일은 없어야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자체는 늦기는 하였으되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만년의 문화민족을 자랑하면서도실제로는 민족적 예지와 긍지를 현양하는 정신이 미흡했음을 상기할 때 우리역사전통속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선인들을 우리들의 현실속에서 기리는 것은 절실한 요청이겠다.
더욱이 그동안 우리들은 역사적 위인중에서도 유난히 정치인과 무인들만을 중시하고 순수한 문화적 업적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외세의 침탈에 수없이 시달리며 삶을 꾸려와야했던 민족역사의 특수성때문에 불가피한 일이겠으나 민족의 진취와 미래세계로의 발전을 기약하는 오늘의 시점에선 민족의 정신과 문화의 저력을 형성하는데 앞장섰던 선인들에대해 새로운 조명이 불가피하게됐다.
때문에 이사업의 안정성은 매우 높은 것이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업이 국민적인 지지를 갖는 권위 있는 사업으로 결실을 거두기 위해 학·예술원과 같은 기저를 통해 폭넓은 지혜와 공정한 집행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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