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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레이건과 오바마, 그리고 불평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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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

미국은 1970년대 말 이래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기 시작했다. 불평등은 치솟았고 교육 발전은 정체됐다. 교도소 수감자는 다섯 배로 뛰었다. 가족 해체는 가속화됐다. 중산층 가계소득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급기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84년 대선 슬로건으로 “미국에 다시 아침이 옵니다”를 내걸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국의 보통 사람은 레이건 시대 때부터 불평등과 침체의 어둠에 갇히기 시작했고, 특히 2000년대부터는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불평등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더욱 심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경제적 형평의 확대를 주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먼저 알아둘 주의사항이 있다. 오바마 정책은 애초에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행되지 못할 것이고 아마 국민의 생각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정치학자 조지 C 에드워즈의 연구에 따르면 국민이 대통령 연설을 듣고 마음을 바꾸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2014년 국정연설을 기억하는가. 대통령이 제안한 18개 정책 중 이행된 것은 2개뿐이라고 PBS는 보도했다. 총기 범죄 규제를 열정적으로 주창한 2013년 국정연설은 또 어떤가. 별다른 성과도 없었고 이번 연설에서 대통령은 총기에 관해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국가 어젠다를 정하고 미국의 양심에 호소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진다. 아동 조기교육 문제 등에 관한 오바마의 해법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오직 소수만이 화려하게 승승장구하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그의 질문은 불평등 문제의 정곡을 찔렀다.

 일단 알아둬야 할 사실을 짚어보자. 세계 대공황이 있었음에도 미국은 1900~75년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소득과 교육 수준은 거의 상승세였고 불평등 지수는 보합세였거나 하락했다. 그 혜택은 부유층과 빈곤층 모두에게 돌아갔다. 고등학교 졸업률은 급등했고 군인들은 대학에 진학했다. 미국은 교육적 성취 면에서 세계를 앞서나갔다. 이 경이로운 시대에는 최고 연방소득세율이 90%를 웃돌 때도 있었다. 그러나 70년대 말부터 미국 서민들에게 예기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는 ‘정상의 종말’ 시대였다고 경제학자 제임스 K 갤브레이스는 신저 『정상의 종말(The End of Normal)』에서 주장한다. 이후 미국 경제의 전체 파이는 커졌지만 전리품은 부유층이 독식했고 하위 90%는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현재 중산층 가계소득은 79년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지금은 미국보다 캐나다 가계의 사정이 더 나아 보인다. 미래를 위한 씨앗인 미국의 교육은 전반적으로 정체됐다. 지금은 부모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자녀(20%)가 낮은 자녀(29%)보다 적다. 다른 산업국가에서는 세 살 아동의 70%가 유치원에 가지만 미국에서는 그 수치가 38%밖에 되지 않는다. 레이건 시대 이래의 족쇄 풀린 자본주의와 ‘탐욕이 좋다’는 믿음에 대한 찬양은 불평등을 가속화시켜 온 사회적 관행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레이건은 “생산적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는 옳았다. 오바마도 근로 장려를 위한 효과적 제안을 했다. 보육 서비스와 병가(病暇) 정책 개선 역시 근로 장려에 도움을 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유급 출산휴가를 제공하지 않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바마는 기회 창출 면에서 훨씬 효과적이라는 신생아부터 5세까지의 아동 조기교육 이니셔티브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조기교육 이니셔티브는 설문조사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에서 앞서가는 주정부 중에는 오클라호마처럼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도 있다. 그런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이 대부분 전시용이라 하더라도 미취학 아동 교육은 적어도 주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가 국정연설에서 언급한 청소년 임신율 하락은 축하할 일이 맞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선 MTV 프로그램 ‘리틀맘 다이어리(16 and Pregnant)’가 도움을 준 것이지 오바마와 별다른 관계가 없다. 신뢰할 만한 피임 방법을 위험군 청소년이 이용하도록 한다면 낙태율을 낮추고 이후 복지비를 감축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은 지금껏 자가용 비행기와 거대 금융기관, 헤지펀드 매니저를 보조해왔다. 그러나 그보다 아이들을 위해 예산을 지출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양도소득세 인상으로 교육과 인프라, 일자리 개선을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면 당연히 우선순위를 변경할 가치가 있다. 공화당 의원들은 지금의 유가 기준으로 경제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송유관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국가적 어젠다가 확장돼 지난 35년이 하나의 일탈일 뿐 암울한 미래의 전조가 되지 않기를 희망해 보자.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월 23일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