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해석 생소할 수도 … 음악의 힘으로 극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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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28면

프랑스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하 ‘바람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서 2월 15일까지) 라이선스 공연이 지난 9일 막을 올렸다. 원작 탄생 80주년을 맞는 해에 아시아 초연으로 들여온 데다, 크고 작은 사건들로 뮤지컬 위기론이 대두됐던 지난 한 해를 보내고 올 들어 포문을 여는 첫 대극장 뮤지컬이라 관심이 집중됐다. ‘십계’ ‘로미오와 줄리엣’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화려한 제작진에 프랑스에서 9개월간 90만 관객 동원이라는 기록적 수치, 영화배우 주진모, 소녀시대 서현 등 최강 싱크로율 캐스팅까지 골고루 기대를 모았다.

아시아 초연 佛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박영석 프로듀서

뚜껑을 열자 반응은 엇갈리는 상황. 원작이 워낙 전설의 명작인데다 문화계 전체에 복고풍이 부는 요즘 흑백영화 명장면을 재현하는 무대가 절호의 레퍼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원작을 기억하는 중장년층의 호응에 힘입어 몇 차례 매진도 기록했고 줄곧 예매율 상위에 랭크돼 있다. 그러나 20대와 언론의 평가는 차갑다. 서사가 매끄럽지 않고 명장면 짜깁기에 그쳤다는 것이다.

20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박영석(45) 프로듀서는 이런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작품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관객과의 소통이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우리 관객은 브로드웨이식 드라마에 익숙하죠. ‘바람사’는 시각적이고 예술적 차원을 강조한 작품이라 장면이 함축적입니다. 소설이나 영화처럼 스토리라인을 기대하니 충족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원작을 보지 않은 분께도 친절하게 다가가려 손보고 있어요. 제작진과 긴 협의 끝에 23일 공연부터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입니다.”

사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프랑스 뮤지컬은 관전포인트가 다르다. 브로드웨이는 쇼뮤지컬과 드라마가 따로 있는 반면, 프랑스는 한 무대에 아우르기 때문이다. “33명 앙상블 중 댄서가 스무명이 넘을 정도로 안무가 강조된 작품입니다. 최고의 안무가 카멜 우알리의 예술적 안무인데 오히려 몰입을 깬다는 지적도 있네요. 흔히 비교되는 ‘노트르담 드 파리’보다 원작의 드라마가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안무 하나하나에 함축된 메시지가 있는데, 관객이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부분도 조절해야겠죠.”

하지만 영화 속 명장면을 하이라이트로 엮은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모두가 기억하는 이미지들을 꼭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린 ‘주말의 명화’ 세대라 필름화된 이미지들을 갖고 있잖아요. 코르셋 조이는 장면, 계단 구르는 장면, 석양 키스 장면 등 그 이미지들을 결코 버릴 수 없어요. 안 보여줘도 비판받을 겁니다.”

미국 소설을 프랑스식으로 해석한 무대를 다시 한국인들이 연기한다는 것은 사실 근본적인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소설과 무대의 메시지부터 미묘하게 차이가 있고, 불어와 우리말 구조가 달라 번역 과정도 험난했다. ‘바람사’ 공연권을 따는 일도 쉽지 않았다. 프랑스 창작진은 물론 원저자인 마가렛 미첼의 후손들과도 로열티 계약을 맺어야 했다. 아시아 시장에 관심 없는 원저자 측과 접촉 자체가 어려웠고, 간신히 해결하고 나니 영화사 워너 브러더스와도 따로 계약을 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감수하며 굳이 ‘바람사’를 들여온 이유를 박씨는 “음악 때문”이라 잘라 말했다. 엠넷 프로듀서 출신으로 ‘오페라의 유령’에 반해 뮤지컬에 뛰어들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요셉 어메이징’ 등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을 제작해 온 그는 ‘음악의 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뮤지컬은 음악으로 충족시켜야 해요. 드라마는 그 다음이죠. 노예들의 강렬한 합창에 매료됐습니다. 프랑스 작품이라 전쟁과 사랑 이야기를 넘어 자유와 평등, 박애의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거든요. 커튼콜에서조차 노예들의 노래를 앞세우는 독특한 감성을 한국에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이미지에 부합되고 음악적 톤이 맞아야 한다는 원작자 측의 까다로운 조건을 뚫고 캐스팅된 주진모와 서현은 작품에 대한 욕심으로 누구보다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 연습실 문 따고 들어간 게 주진모씨에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뮤지컬에만 집중했죠. 첫 공연날 떨려서 한숨도 못잤고, 결국 만족 못해서 울었답니다. 작품에 대해 그만큼 진심인 거죠. 서현도 본인이 먼저 역할 욕심을 냈고, 작품 위해 창법까지 바꿨어요. 배우들이 카톡방을 개설해 서로 모니터링 해주면서 돕는 모습이 고마울 정돕니다.”

개막 이후 그는 매일 공연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다. 관객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다. “박수가 나올 순간인데 안 나올 땐 이유가 있거든요. 그런 걸 제가 찾아내야죠. 분명한 건 원작의 감동을 살려내야 한다는 겁니다. 이미 원작자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길게 보고 있기 때문에 관객과 소통하며 업그레이드해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바람사’는 서울에 이어 대구, 인천, 부산, 진주 등 지방 투어가 확정돼 있다. 최근 중국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베이징과 상하이의 대형 기획사 두 팀이 찾아 왔어요. 우리 프로덕션으로 2500석 극장에서 6개월 공연을 하잡니다. 단, 미국 소설이니 미국배우를 뽑는 게 중국식이에요. 한류가 아니라 우리 창작진의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죠.”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쇼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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