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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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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새 국무총리 후보자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명하고 일부 청와대 비서진 교체 인사를 발표했다. 이 총리 후보자의 중용설은 사실 오랫동안 정치권에 떠돌던 얘기다. 그러나 원내대표의 임기 만료(5월) 전에 그를 조기 기용한 건 집권 3년차를 맞아 당청(黨靑) 관계, 대야(對野) 관계를 개선하고 국정운영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음종환 전 청와대 행정관의 문건 배후 발언 파문에 이어 샐러리맨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연말정산 파동 등 잇따른 악재로 인한 민심 이반과 지지율 추락을 막기 위한 박 대통령의 승부수란 측면에서 총리 교체는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스럽다.

 하지만 쇄신과 소통을 요구해온 민심의 목소리를 제대로 수용했느냐는 점에선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턱없이 못 미친 미흡한 인사였다. 우선 국정문란과 기강해이를 초래한 책임의 한가운데 있는 3명의 비서관과 김기춘 비서실장을 유임시킨 건 실망스럽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조직개편의 후속작업이 남았다는 이유로 “당분간”이란 꼬리표를 달아 김 실장을 유임시켰고,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도 현재의 자리를 유지하게 했다. 이재만 비서관은 총무비서관직은 유지하되 인사위원회에 참석하지 않도록 했다. 안봉근 비서관은 자신이 소속돼 있던 제2부속비서관실이 폐지됨에 따라 홍보파트로 수평 이동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김 실장과 3명의 비서관에 대한 무한 신뢰가 여전함을 다시 입증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적 요구를 비껴간 인사조치에 대해 야당에서도 “김 실장과 이른바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사조치가 분명하게 이뤄지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 엄중히 문책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한 것”(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이라거나 “앙꼬 없는 찐빵 같은 인사조치”(진보당 김종민 대변인)라고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가 쇄신의 핵심적 요소가 빠진 ‘눈 가리고 아웅’ 식 인적 개편을 통해 과연 국민의 공감을 얻어내고, 국정동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이 총리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그는 충남지사를 지낸 3선 의원이다. 야당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인맥 역시 두텁다고 한다. 그래서 당·정·청은 물론 여야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청와대도 “경제혁신 과제의 추진, 공직사회의 기강확립, 대국민 봉사와 소통에 적임자”(윤두현 홍보수석)란 점을 평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 후보자는 앞으로 있을 후속 개각 때 소신과 철학을 갖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 책임총리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헌신하겠다”는 이 후보자의 다짐이 허언(虛言)이 되지 않길 기대한다.

 청와대는 정책조정수석(신설)에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발탁하는 등 3명의 수석을 교체하고 4명의 특보를 새로 선임했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륜을 쌓은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특보단에 포진돼 있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들이 여론과 민심의 전달 창구로서 역할을 하려면 수시로 대통령과 만나 국정을 논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이런 소통 시스템의 변화 없는 특보단 신설은 자칫 다람쥐 헛바퀴 돌 듯 헛수고에 그치고 옥상옥이란 비난만 자초했던 역대 정부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청와대는 이번 개편이 국민적 기대에 미흡했다는 여론에 귀 기울여 후임 비서실장 인사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새 출발을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을 도와주기보다 부담만 되었던 불편한 현실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소신껏 능력을 발휘하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불통 논란을 씻어낼 수 있다. 이런 식의 개편이 이뤄져야 시대적 흐름에 맞는 인사요, 흐트러진 청와대의 기강을 바로잡는 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