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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조각의 축복" … 류인, 그를 그리워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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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류인, ‘급행열차-시대의 변’(1991, 118×1550×220㎝). 충남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20일 개막한 이번 전시엔 청동으로 주물 제작하기 전 합성수지(FRP) 원형이 출품됐다. [사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장 입구엔 7명의 벗은 남자 조각상이 섰다. 류인(1956∼99·사진)의 ‘급행열차-시대의 변’(1991)이다. 달리는 열차를 막아세울 듯, 팽팽히 긴장된 근육으로 버티고 선 실물 크기 인체상이다. 류인은 왜곡·변형된 인체를 연극적으로 연출하며 삶에 대한 강렬한 집착과 에너지, 근원적 불안·울분·콤플렉스를 극대화했다.

 충남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류인 작고 15주기전 ‘불안, 그리고 욕망’이 20일 개막했다. 15년 전 이날 43세로 요절한 조각가 류인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였다. 먼저 간 조각가는 그가 남긴 자소상(1978)처럼 영원한 청년이지만, 남은 이들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미술평론가 최열·조은정, 국민대 최태만 교수가 ‘불멸의 천재 조각가 류인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좌담을 열었다. “류인은 20세기 한국 조각이 낳은 축복이다. 김복진·권진규의 맥을 이으며 근대에서 현대로의 문을 연 조각가다. 함께 술을 마시며 우린 ‘마흔 살까지 살 수 있을까’ 했었다. 그는 죽고 나는 남아 몇 차례의 추모전 등 그의 일을 하고 있다”(최열) 등 떠났지만 떠나지 않은 조각가, 시간이 흘렀지만 날로 새롭게 읽히는 그의 작품을 두고 웅숭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류인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류경채(1920∼95)와 극작가 강성희(1921∼2009)의 막내 아들이다. 추상 작업이 지배적이었던 한국 조각계에 인체를 매개로 정밀하고도 힘있는 구상 조각을 선보였다. 작가로 활동한 기간은 10년 정도였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중앙미술대전 특선,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지병인 결핵·관절염·간경화로 짧은 생을 마쳤다. 천안의 회고전을 맞아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 뮤지움 인 스페이스에서는 작가의 초기작이며 최초의 미술대전 수상작인 ‘심저’를 전시한다.

 “선생님 댁에 함께 새배를 갔을 때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류인은 대뜸 ‘선생님은 공무원 같아요. 동회에서 일하는 아저씨 같아요’라고 말해버렸다. 남들은 대놓고 말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들을 그는 서슴없이 드러냈다. 아마도 그런 성질이 작품 속에서 자기를 치고 나가게 하는 요소가 아니었을까. 늘 사고만 내는 친구였는데, 여전히 작품 속에서도 사고를 치고 있다.” 조각가 정현(59)은 홍익대 대학원 동기 류인을 이렇게 떠올렸다.

 개막엔 서울서 온 컬렉터들도 여럿 있었다. 2년 전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해 열린 경매에서 류인의 ‘어둠의 공기’가 35차례의 열띤 경합 끝에 2800만원에 낙찰되는 등 시장의 재조명이 시작된 까닭이다. 동덕여대 강수미 교수는 “요절 작가의 드라마, 작품이 갖는 서사, 시대의 틀을 뛰어넘는 미학 등 류인은 끝없이 새롭게 읽힐 수 있는 조각가”라고 말했다. 4월 19일까지. 성인 3000원. 041-551-5100.

천안=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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