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천 법무 수사 지휘, 검찰 독립 침해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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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법무부 설명대로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각의 일원인 법무부 장관이 특정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지휘권을 행사한다면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건국 후 지금까지 역대 법무부 장관들이 이의 발동을 자제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수사와 관련해 법무부가 청와대 측으로부터 지휘권을 발동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일본에선 1954년 조선의혹 사건 수사 와중에 법무대신의 지휘권 발동으로 유력 정치인을 불구속 기소하자 '검찰 치욕의 날'이라고 불렀겠는가.

최근 여권 인사들은 강 교수 처벌에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제 국정감사장에서 "강 교수 발언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의 발언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고 형사처벌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또 열린우리당의 문희상 의장도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막연한 생각에 대한 사법처리 주장은 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 장관의 이번 수사 지휘권 발동이 이런 여권 인사들과의 교감에서 나온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다.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에 정치적 '외풍'이 작용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불구속 수사 지휘의 근거로 헌법이 규정한 신체의 자유와 형사소송법의 불구속 수사 원칙을 꼽았다. 그렇다면 그동안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없음에도 구속된 숱한 피의자.피고인들에 대해선 왜 눈을 감고 있었는지 묻고 싶다. 법무부 장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검찰 수사에 외풍을 막아주는 일이다. 검찰 수사는 검찰의 손에 맡기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