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고속도로 교통혁명"-서독「자동차 자동운전·정보시스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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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속도로를 주행중인 운전자가 힐끗힐끗 운전대 옆의 계기를 본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50㎞쯤 달렸을까. 계기에「정체현상」이라는 파란색 글짜가 나타나며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점멸한다. 자동차는 얼마쯤 달리다가 첫번째 만나게 되는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난다. 운전자는 외곽도로를 주행하며 계기의 신호가 지시하는 대로 길을 따라 가다가 다시 고속도로의 진입로에 들어선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는 계기를 통해 20∼l백㎞ 전방 도로의 정체상황을 미리 알고 이를 피해 시간낭비나 기다리는 지루함 없이 우회로를 통해 목적지까지 다다르게되는「자동차 자동운전 및 정보시스팀」(ALI=Autofahrer Leit und Informations system)이 서독에서 곧 실용화단계에 들어간다.

<차내계기에 나타나>
서독에서는 이 시스팀을 가리켜 고속도로교통의 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도로의 정체현상뿐 아니라 안개가 끼었거나 눈으로 길이 막혔을 경우, 빙판으로 미끄러울 경우, 공사로 길이 복잡할 경우 등에도 미리 계기를 통해 파악해서 다른 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시스팀은 정보를 제공하고있다.
또 계기의 버튼을 전화번호 다루듯 조작,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어느정도 남았고 어떤 도로를 이용하면 가장 빠른 시간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이 시스팀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운전자가 희망하는 자동차속도를 기억시켜 놓고 가다가 그 속도를 넘을 경우 계기에 경고신호가 반짝이며 동시에「삑삑」소리가 운전자의 주의를 일깨워준다.
ALI시스팀이 서독 자동차교통의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 나라의 도로사정과 도로수송의 비중으로 미루어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서독의 고속도로망은 총연장 7만5천㎞로 미국의 8만8천㎞에 이어 세계 제2위. 고속도로를 포함해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포장도로는 50만㎞로 도로망의 밀도로는 세계제일이다.
게다가 등록된 자동차는 2천4백만대로 국민2.5명당 한대씩이다(서독인구는 6천1백만명).
자동차를 이용한 화물수송은 전체 물동량의 80%를 차지하고 있어 도로교통은 서독경제의 동맥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자동차의 이용률 때문에 거미줄 같은 도로망에도 불구하고 서독의 고속도로가 정체되는 일이 여간 많은게 아니다.
특히 여름철 휴가때나 연휴가 계속될 때면 서독의 고속도로도 교통지옥을 이룬다. 국민의 70%가 휴가여행에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심한 경우는 5∼10㎞의 장사진을 이루고, 3∼4시간이상 길 위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흔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ALI시스팀을 연구해낸 것이 아헨공과대학의 통신 및 자료처리연구소 였고, 이 연구결과를 실용화하기 위해 기술적인 문제를 맡은 것이 서독 자동차통신산업의 첨단을 걷고 있는 블라우 풍크트(BLAU PUNKT)사다.
ALI시스팀의 기술적 과정은 상식적으로 설명하자면 아주 간단하다.

<연구는 아헨공대서>
도로의 표면아래 무선신호를 보내고 받는 송수신기를 설치, 중앙통제소와 케이블로 연결하고 자동차에도 역시 컴퓨터 송수신기를 설치해 서로 통신을 주고받게 함으로써 도로와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통신장치들이 모두 컴퓨터에 의해 작동되는 것은 물론이다.

<블라우사 기술로>
도로표면 4㎝밑에 자동차로부터의 신호를 포착하는 송수신장치를 파묻고 이를 중앙통제소와 연결해 중앙통제소에서 정보를 분석, 기억했다가 자동차에 설치된 ALI시스팀의 요구에 따라 정보를 주고받도록 하고 있다.
ALI시스팀은 79년부터 81년까지 3년 동안 서독의 공업지대인 루르지방의 고속도로 1백㎞에서 실험, 기술적인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당초의 예상대로 이 시스팀을 전국적으로 실현시킬 경우 경비는 3억5천만∼4억5천만마르크(l천50억원 내지 1천3백50억원)가 소요돼 그만한 경비를 들여 실용화할 가치가있느냐는 의문도 있었지만 서독의 경제규모로 보아 그 정도의 재원을 염출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3억5천만마르크의 경비가 많다고 하면 송수신장치를 최소한으로 줄여 1천5백만마르크(45억원)로 시설할 수 있다고 블라우 풍크트사 측은 밝혔다.
물론 이 ALI시스팀을 자동차에 설치할 경우 운전자의 부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블라우 풍크트사는 차량에다는 신호기를 대량 생산할 경우 3백마르크(9만원)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설비 45억원 정도>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이처럼 실현가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일부 교통전문가들은 부작용도 고려한 뒤 실용화 여부를 결정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자동차에 너무 많은 계기가 부착돼 운전자를 오히려 혼란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라디오 교통정보, 카세트 음악 청취에 ALI시스팀까지 추가되면 운전자에게 과중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또 ALI시스팀이 완전 실용화되어 거의 모든 자동차에 부착됐을 경우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운전자들이 계기가 지시하는 대로 일제히 고속도로를 벗어나 외곽도로로 몰릴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외곽도로에서 정체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에 대해 블라우 퐁크트사의 ALI계획 책임자인「쿰」박사는『ALI의 신호에 따르고 안 따르고는 운전자의 재량에 달린 것이지 신호대로 행동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고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4백여명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83%가 이 시스팀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2%뿐이었다.
이런 실험결과들을 토대로 서독의 교통부와 과학기술부는 ALI시스팀의 구체적인 실용화를 검토중에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서독의 자동차교통에「혁명적인 전환점」이 오게될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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