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39년 만의 좌·우 대연정] 기민·사민 "정책 50% 겹친다" 의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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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당수(오른쪽)와 7년 만에 물러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기민·기사당 연합과 사민당은 10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대연정을 구성키로 합의했다. [베를린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이 두 번째 대연정 실험에 들어간다. 39년 만이다.

지난달 18일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중도 좌파 사민당이나 앙겔라 메르켈의 중도 우파 기민.기사당 연합 중 어느 한쪽의 손도 확실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양측은 좌.우 대연정을 현실적 대안으로 인정하고, 그동안 힘겨운 협상을 해왔다. 10일 3차 협상에서 결국 슈뢰더가 메르켈에게 총리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3주 이상을 끈 산고 끝에 대연정에 합의했다.

메르켈이 이끌 대연정의 앞날이 순탄할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전임자인 슈뢰더 총리가 시작한 경제.사회개혁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 47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 문제, 깊어지는 동.서 간 갈등의 골 등 하나같이 어렵고 힘겨운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대연정의 출범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연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전망은 대체로 낙관적이다. 기민당과 사민당이 추진하는 정책의 약 50% 이상이 서로 겹친다는 것이다. 사민당의 한 중진의원은 "개혁의 목표는 같고, 단지 이를 구현하는 수단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연금, 의료보험, 노사공동결정제도, 해고 조건 완화, 연방제 개혁 등에서 충분한 타협이 가능할 정도로 양측 간에 정책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민당의 한 의원도 "양당의 정책 내용에 사실 큰 차이는 없다"며 "다만 개혁 강도를 좀 더 높이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대연정의 앞날을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함부르크 세계경제연구소의 토마스 슈트라웁하르 소장은 대연정의 앞날을 낙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물리적 결합에는 일단 성공했지만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대연정이 정치적인 소강 상태를 초래함으로써 개혁이 정지되고,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원자력 발전소 폐기 문제, 교육정책, 세제 및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상반된 입장이 어떻게 절충될지, 또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경제일간지 한델스 블라트는 "차기 정부는 늘어나는 재정적자의 부담과 경기 회복의 불투명성, 세수(稅收)의 불확실성 등으로 상당히 어려운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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