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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수매가의 동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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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곡가에 관한한 우리는 물가안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늘 주시해왔다. 그러나 이번 보리수매가의 경우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하자는 논의는 당장의 실익에만 너무 기운 인상이다.
물론 올들어 물가가 전례없이 안정되어있고 재정의 누적된 어려움을 안고있는 현실에서 각종 농산물의 가격지지를 이전처럼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은 알려진 바와 같다.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보리수매가의 동결주장도 이런 현실을 고려한 고육지계의 하나일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농산물 특히 주곡의 가격정책은 다른 공산품이나 기타 임금등 생산요소 가격과는 매우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예산이나 공무원봉급을 동결하는 것과는 다르다.
곡가결정에서 가장 중시돼야 할 요소는 장기적 생산안정과 그에 따른 원천적 수급안정이다. 그 결과로서 얻어지는 곡가안정이 가장 바람직한 상태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른 공산품가격과는 달리 주곡의 시장과 가격은 자유시장이 아닌 관리된 공공시장에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수매가결정이 일시적, 현실적 여건에 너무 좌우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그 실례를 점감하는 주곡자급도나 직부면적의 장기적 감소에서 찾아볼수 있다. 한때 30만정보를 넘었던 보리식부면적이 최근에는 12만정보까지 줄어든 사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제수지에 장애만 없다면 구태여 생산성 낮은 농업생산에 아까운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곡정책에서 언제나 미해결로 남게되는 비교우위론도 이런사정 때문임을 고려한다면 우리에게는 적어도 90년대까지 주곡지지정책은 숙명에 속한다는 점을 솔직히 받아 들여야 한다.
지난해 보리수매가는 비전년 7%인상이 결정됐다. 그러나 가마당 2천원씩의 생산장려비가 지급됨으로써 실제로는 13·7%가 오른 셈이다. 올해 보리생산은 작년에 비해 10%가 더 많은 6백50여만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같은 보리대풍은 수매가의 적절한 보장이없었으면 가능했을 것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가 1·7%밖에 오르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올해 상승률일 뿐 지난해 6월이후 1년간은 3·8%가 올랐다. 지난3월을 기준으로 한 농가구입가격 지수는 1년간 14·3%나 올라 같은 기간의 판매가격지수 상승률 13·7%를 앞질렀다. 이는 곧농가교역조건의 계속 악화를 의미한다.
이런 여러 사정을 고려하고도 보리수매가를 동결하기 위해서는 보리생산의 감소를 대체할 적절한 양곡수급계획을 세워놓든가 아니면 부족분을 해외에서 들여올 각오를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
더욱 문제는 보리의 생산대체도가 높은 점이다. 장기적인 생산안정의 기반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보리식부면적은 언제나 급격히 변동될수 있음은 과거의 경험으로 늘 보아왔다.
농산물수매가의 결정이 언제나 농업소득보장의 측면에서만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더욱이 그것이 재정이나 소비자의 감내할 수 없는 부담을 전제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최소한의 생산비와 적정생산이윤은 언제나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장기적인 경제안정과 물가안정에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런 보장의 기능은 주곡시장의 공공적 특성때문에 정부가 계속 맡아하지 않으면안되는 역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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