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도 주장도 없는 답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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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외의 모든 문제를 충분한 토론으로 남김없이 해결하겠다고 여야가 입을 모아 다짐했던 정치국회가 첫날부터 문제의 해결은커녕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 인상이 짙다.
2명의 야당의원이 자기대로는 심혈을 기울여 80분간에 걸쳐 전개한 논리에 대해 국무총리는 단7분만에 답변을 해치웠다.
국회에서의 답변이 명쾌·간단해야하고 요점주의가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솜씨라 해도 80분의 논리를 7분만에 요약할 수 있을까.
그 나름의 논리전개의 결론으로 도출된 질문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라고 만 답변한대서야 「충분한 토론」도 될 수 없고 질문이 제기한 문제의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 질문에 담긴 논리를 수긍할 수 없다면 수긍 못하는 논리를 답변은 제시해야하며 반박논리를 질문자가 납득해야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더우기 이날 다룬 일들이 어떤 일들인가. 지난 2년간 국회에서 다뤄볼 염도 못 내고 다뤄보지도 못했던 고도의 정치문제·시국문제들을 다루면서 그토록 논리도 주장도 없는 답변이 나오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불을 끄기는커녕 새로운 불씨를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김영삼씨 단식사건의 보도가 늦어진 이유에 대한 총리답변이 『사건자체가 일상적인 게 아니고 귀추를 쫓다 보니 일반에 알려지는 것이 늦어진 게 사실』이라는 것이었다.
문공장관은『언론이 스스로판단해서 보도에 신중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보도가 20여 일이나 늦어진 사실에 담겨 있는 온갖 정치적·사회적 함축을 모조리 도외시한 채 그야말로 『당신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식의 답변이라고나 할까.
이런 답변이 요행 의원들의 추궁을 면하고 그대로 잘 넘어갔다고 한다면 문제는 해결되고 다시 세상은 태평성대가 되는 것일까. 우리 언론의 실상을 그야말로 낱낱이 온 세계에 광고한 이 문제가 국회에서의 현장 모면만으로 해결된다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흔히들 국회기능 중 갈등처리 기능을 강조한다. 의회가 갈등을 적절히 처리해줌으로써 사회적 분쟁이나 정치적 불안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정치적인 통합도 유지된다는 것이다.
갈등의 해소는 상반된 이해를 가진 쌍방이 토론과 설득을 통해 타협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기초적인 메커니즘 자체가 혹시 우리 국회에서는 불가능해 지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마저 든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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