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한글의 아름다움 세계에 널리 알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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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한글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것이 제 삶의 마지막 목표입니다."

한글날을 기념해 7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동양예술 박물관'에서 한글 서예전을 개최한 사단법인 한국 서학회 이사장 이곤(75)씨에게서는 선비다운 기풍이 물씬 느껴졌다. 이 이사장은 서학회 회원들이 출품한 한글 서예 작품 57점을 들고 동료 회원 21명과 함께 러시아를 찾았다.

이날부터 17일간 러시아 최대 규모의 동양예술 박물관에 46점, 세계 4대 도서관으로 꼽히는 레닌 국립도서관 동양문학센터에는 11점을 전시한다.

모스크바 국립대가 전시회 공동 주최자로 나섰다. 동양문화라면 당연히 중국과 일본을 꼽고 웬만한 작가들에겐 전시 기회조차 주지 않는 동양박물관이 전시공간을 선뜻 내주고, 자존심 세기로 유명한 모스크바대가 공동 주최자로 나선 것은 순전히 출품작들의 예술성 때문이었다.

"서예하면 흔히들 중국이 원조, 일본이 제일의 계승자라 생각하지만 한국의 수준이 일본을 능가합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글 서예의 우수성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출품작 중엔 박목월 시인의 시 '나그네'와 동요 '고향의 봄'등을 유려하게 써 내려간 것에서부터 러시아의 대표적 작가인 푸슈킨,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의 작품 일부를 번역해 한글로 쓴 것 등 다양했다. 러시아어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붓으로 쓴 작품도 있었다. 푸슈킨의 유명한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러시아어와 한글로 나란히 쓴 이 이사장의 작품도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러시아인과 한국인의 예술혼은 닮은 데가 많이 있는 것 같다"며 "개관 첫날부터 3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려 이번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끝날 것 같은 예감"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박물관 큐레이터인 타티야나 메타하는 "중국 한자 서예가 웅장하고 화려한 작약꽃 같다면 한글 서예는 단순하지만 깊이가 있는 난꽃 같은 매력을 풍긴다"고 말했다. 한국 서학회 측은 전시 후 출품작 57점을 모두 러시아 측에 기증키로 했다.

한학자인 선친의 영향으로 7세 때부터 붓을 들기 시작한 이 이사장은 1986년 '한국 서학연구회'를 조직, 한글 서예 보급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한국 서학회'는 현재 60여 명의 수준급 회원들이 가입해 있다.

서학회는 94년 중국 지린성 옌지시에서 최초의 국외 한글 서예전을 개최했으며 2001년 미국 하와이에서 두번째 국외 전시회를 열었다. 올해 모스크바 전시회에 이어 내년엔 미국에서 두 차례의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2007년엔 독일에서도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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