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예금 이자로 장학금 지급하는데 … 금리가 2%대니 학생들 어찌하오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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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동원그룹이 만든 공익법인 ‘동원육영재단’은 설립 36년 만에 가장 큰 벽에 부딪혔다. 운영 중인 몇몇 공익사업이 존폐 위기에 처해서다. 바닥을 기는 예금 금리가 문제였다. 동원육영재단은 법규에 따라 재산을 정기예금에 주로 맡기고 거기서 나온 이자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그런데 정기예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수익률도 함께 추락했다. 주식을 제외한 재단의 현금성 자산은 2009년 125억원에서 지난해 136억원으로 늘었지만 수익은 7억6580만원에서 3억6802만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중 자산 수익률은 6.1%에서 2.7%로 고꾸라졌다. 이 재단 최순옥 차장은 “재단 사업의 하나로 대학 한 곳당 10억원을 기부한 뒤 거기에서 나온 예금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2007년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학기당 250만원씩 각 대학마다 10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었는데 정기예금 금리가 낮아지면서 현재 대학 한 곳당 지원 학생 수가 5~6명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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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도와 개그맨 이경규씨가 2012년 만든 ‘팔도 꼬꼬면 장학재단’도 비슷한 처지다. 5억원인 재단 기금은 수년 째 제자리 걸음이다. 재단 관계자는 “자산 대부분을 정기예금에 예치하고 이자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예금 금리가 해마다 하락하면서 라면 판매 수익금을 더해도 원금을 불리기는커녕 매년 70여 명 수준의 장학금 지급 인원을 유지하는데도 빠듯하다”고 설명했다.

 예금 이자에 의존해 사회공헌 사업을 펼쳐온 공익법인들이 곤경에 처했다. 초저금리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그늘이다. 법규상 공익법인은 재단기금 원금(기본재산)에서 나온 수익금을 쌓아 만든 돈(보통재산)을 굴려 사회공헌 사업을 해야한다. 재단 재산을 불리거나 수익을 내는 방법도 정기예금, 부동산, 주식 배당금 등으로 한정돼 있다. 다른 방법으로 이익을 내려면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기본재산을 헐어 쓰는 건 규정이 엄격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금리 시대가 길어지면서 예금 외에 마땅한 수익원을 찾지 못한 소규모 공익법인이 ‘운영비도 못건진다’며 해산 선언을 하는 일이 최근 2~3년 들어 빈번해졌다. 근래 대규모 공익법인까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해마다 300명 넘는 학생을 지원해 온 A재단 관계자도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학기마다 140~150명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는데 올해 처음으로 지원 인원을 줄이는 걸 검토 중이다. 정기예금 이자가 연 3%대만 돼도 유지를 하겠는데 올해는 2.2%밖에 안 된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다. 정부 제도를 따르자면 기부를 더 받던가, 공익사업 규모를 줄이던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2014년 사회공헌백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234개의 2013년 사회공헌 지출 비용은 2조8115억원으로 2012년(3조2535억원)보다 13.6% 줄었다. 사회공헌 지출을 줄인 이유로 경영 성과 부진을 꼽은 회사가 가장 많았다.

 자산 관리가 전공인 금융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신한금융지주는 7개 계열사로부터 출연금을 받아 1000억원 규모로 ‘신한장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장학재단 관계자는 “출연금 운용을 주로 정기예금에 의존하고 있다. 정관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극히 일부분만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있다”며 “최근 저금리 기조로 인해 출연금의 수익률이 하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공익법인이 재산을 지키면서 안정적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족쇄가 된 것이다.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은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기본재산만 지키면서 이렇다 할 공익활동을 하지 못하는 휴면재단이 상당수 나타날 수 있다”며 “미국 같은 선진국의 경험을 거울 삼아 사전·사후 관리를 엄격히 한다는 전제 아래 기본재산 일부를 공익사업에 직접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 공익법인의 자산 운용 방식도 다양화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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