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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선 더 못 열라, 아웃렛 초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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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8일 오후 유명 백화점 A업체 임직원은 긴급회의를 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표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기폭제가 됐다. 이 법안은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로부터 2㎞ 이내에 대형마트·아웃렛·상설할인매장 개설을 제한하는 게 골자다. 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치권의 유통법 관련 규제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SSM)에 이어 아웃렛까지 뻗친다.

 ▶부장 B=백화점이 지금 매출이 멈췄잖아요. 물가를 감안하면 백화점은 마이너스인데 아웃렛까지 규제하면….

 ▶임원 C=말이라고 해. 서울에만 시장이 210개가 넘는데 2㎞면 시청을 중심으로 서소문, 서대문 다 걸리지. 출점이 아예 안 돼.

서울시에 따르면 25개 자치구에는 210개가 넘는 전통시장이 있다. 중구가 28개로 가장 많고 서초구가 2개로 가장 적다. 평균치인 9개의 전통시장이 있는 양천구의 경우를 살펴보니 시장 반경 2㎞ 규제법 아래 아웃렛이 들어설 곳은 없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백화점 ‘제로 성장’ 시대. 아웃렛 사업으로 지난해 매출 부진을 극복하려던 롯데·현대·신세계 등 이른바 ‘유통 빅3’는 새해 벽두부터 비상이다. 당장 올해부터 줄줄이 잡아놓은 아웃렛 개점 계획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올해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와 경남 진주에, 내년엔 경기도 양주에 아웃렛을 열 예정이다. 신세계 역시 여주점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며 2017년 경기도 시흥에도 신점을 낼 계획이다. 의정부시와 나주시와도 입점을 논의 중이다. 가장 마음이 급한 건 현대백화점. 현대는 당장 다음달 27일 김포 프리미엄 아울렛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와 신세계에 비해 후발주자인 만큼 올 하반기로 예정된 송파점은 물론 내년 초 문을 열 인천 송도점 공사도 한창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아웃렛이 하루아침에 지어지는 것도 아닌데 지금 공사 중인 곳은 어쩌란 말이냐”며 “업계에선 법안이 통과되기 전 서둘러 개점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형 아웃렛을 선호하는 신세계도 곤란하긴 마찬가지다. 신세계 관계자는 “전통시장이나 상가가 워낙 소규모로 넓게 퍼져 있어서 2㎞ 규제가 도입되면 영향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직접적인 반발은 자제하고 있다. 중소상인을 보호한다는 입법 목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칫 ‘경제민주화에 반한다’는 비난에 맞닥뜨릴 수도 있다.

 대신 아웃렛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며 소비자 여론이 모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광명점은 광명시민 200여 명을 채용했고 김해점은 전체의 80%, 부여점도 60% 이상을 현지에서 채용했다”고 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 또한 “전통시장과 아웃렛은 판매하는 상품이 겹치지 않는다”며 “아웃렛을 규제하면 오히려 재고 처리 통로가 위축돼 국내 패션업계에 피해가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세계백화점 측도 “아웃렛을 찾는 사람들이 주변 관광도 함께 하기 마련이다. 지역 경제 기여효과가 여주점만 5000억원으로 집계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국회가 대기업 편을 들 생각은 없다”면서도 “대형마트 격주 휴무제 등으로 영업을 규제한 이후 오히려 납품하는 농어민과 중소협력업체 매출이 줄고 소비자 불편이 커지는 등 입법 취지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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