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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쟁력 순위 제대로 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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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러나 이번 급상승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냥 흐뭇해할 일만은 아니다. 지난 1년 새에 우리 경제가 이렇다 하게 좋아진 구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성장전망 또한 갈수록 낮춰잡고 있는 판에 '성장경쟁력 순위'가 12단계나 도약한 것이다. 2004년 전년의 18위에서 29위로 11단계 추락했다가 1년 만에 12단계 도약했으니 영락없는 널뛰기다. 더구나 WEF와 지금은 경쟁관계인 스위스 로잔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 5월 발표한 2005 세계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대상 60개국 가운데 29위였다.

국가경쟁력은 한 나라 또는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국가 또는 기업에 비해 보다 많은 부(富)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기업의 경쟁력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및 교육적 환경 등을 복합적으로 따진다. 인터넷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환경, 반도체 휴대전화 바이오 분야의 기술혁신, 기업의 연구개발투자, 산학협력, 저금리와 높은 저축률 등 거시경제환경의 호전 등이 이번 급상승을 주도했다. 여기다 지난해 11단계 순위 추락 이후 우리 당국이 한국의 실상을 능동적으로 알리는 등 적극적 '시정 노력' 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활동 환경의 질을 나타내는 기업 경쟁력 지수는 24위로 제자리걸음이다. 노사관계, 개방 및 규제완화, 투자자 유치 및 외국인 인력 고용 등은 하위권이고 특히 우리의 주된 경쟁국인 대만.싱가포르.일본 등과는 성장게임에서 현격한 열세다.

경쟁력 순위는 물론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조사기관에 따라 편차도 심하다. WEF 랭킹에서는 핀란드가 수년째 단골 1위지만 IMD 랭킹에서는 미국이 부동의 1위다. IMD 랭킹 2위인 홍콩은 WEF 랭킹에선 한국보다 11단계 아래인 28위다. '세계의 공장' '소프트파워의 대국' 중국과 인도는 IMD 랭킹에서는 30위권이지만 WEF 랭킹에서는 49위와 50위에 처져 있다. 부존자원도 빈약한 인구 500만의 핀란드가 '세계의 혁신센터' 미국을 제치고 어떻게 1등을 도맡을 수가 있을까.

경쟁력은 이동하는 목표며 그 실체는 성장동력과 그를 유연하게 뒷받침하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다. 공공정책의 투명성과 정직성, 기업경영에 신뢰를 주는 사회적.제도적 환경이 기업의 뒤를 받칠 때 강력한 추동력이 생긴다. 밴텀급인 핀란드가 헤비급을 제치고 1등이 된 것은 이런 강소국(强小國)의 강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홍콩은 중국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부패와 재산권 침해, 정부의 정실 개입 등 제도적 환경의 질 악화로 순위가 추락했으며 중국과 인도 역시 제도적 취약성과 거시경제적 환경 악화가 발목을 잡고 있다.

경쟁력 순위는 연례적인 '성적발표'가 아니다. 각국이 서로의 장단점을 비교하며 부족하고 잘못된 것은 보완하고 시정토록 유도하는 지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한 각국의 성장은 지구촌 전체의 성장과 복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성장동력을 부단히 점검하고 추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조성이 그 메시지다. 정부의 절제, 기업활동의 자유, 글로벌리즘이 세 척도다. 여기에 비춰보면 우리 현실은 어떤가. 기업과 가진 자가 갖은 스트레스를 받고, 분배 균형논리에 밀려 경제.사회.교육 분야에서 성장과 경쟁의 원리가 날로 힘을 잃고 있다. 재정적자에다 민족논리를 앞세운 막대한 '한반도 투자'계획은 한국경제 최대의 잠재 리스크로 벌써부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성장률이 3년 연속 3~4%대, 더 이상 처지면 '독일형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들 수도 있다. 순위 급상승에 안도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