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노명 차관보<한-중공협상 수석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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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이 이번에 대한 직접교섭에 나선 것은 중공이 항공기 납치사건을 조속하게 해결해야 할 필요성도 물론 있었겠지만 앞으로의 양자관계를 대비한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봐야겠지요.』
중공피납기 사건의 해결을 위한 한·중공간 사상 최초의 직접 교섭에서 우리측 수석대표를 맡아 일약 유명해진 공노명 외무부 제1차관보는 11일 교섭의 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심도 중공측 수석대표가 이번 사건처리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서울에 오지 않아도 처리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 점을 들어 그들의 방한이 이 사건 해결 차원 이상의 의의를 시사했다고 말했다.
공 차관보는 이번 직접교섭이 정치 외교적으로 양국간에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또 심도 중공대표가『양자간에 민간교류를 하는 것이 좋겠으나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전해 한·중공 양국관계가 당장 어떤 돌파구를 연다고 성급하게 추측해서는 안되겠지만 대국적인 면에서 좋은 징후가 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또 중공대표단과 승객에 대해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환대하지 않았느냐는 항간의 비판에 대해 『그것은 조난자와 조난기에 대해 베푸는 일반적인 국제관행의 최소한의 예양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번 회담의 의의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이번의 직접 접촉은 양국 건국 이후 첫 공식 회합이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또 상호간에 문서를 남겼으며 회담을 통해 상호간의 협조와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됐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인도주의적이고 국제법과 관례를 준수하는 자세와 개방정책을 널리 알려 국위선양에 무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이 큰 의의라고 생각합니다.』
-각서 ⑨항에 긴급사태의 경우 서로 앞으로도 협조키로 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양자간에 이런 조항을 통해 실질적인 접촉 창구를 열어 놓았다는데 의미가 있읍니다. 그리나 긴급사태라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와는 별도입니다』(중공측은 우리가 제시한 이 항목 중 「양국간」을 「양자간」으로 고친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번 교섭 과정에서 사건처리 이상의 정치 외교적 접근이 있었는지….
『분명히 밝힐 수는 없지만 그런 감이 중공측에서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느꼈습니다. 심도 대표가 이 사건 처리를 위해 반드시 서울에 오지 않아도 할 수 있었다는 말을 강조해서 지적한 것이나 우리가 국제협약상에 그들이 오지 않더라도 일방적으로 송환해야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서울에 온 이유는 명백해집니다.
그들이 가장 빠른 시기에 즉각 서울에 오겠다고 한 것은 중공 정부의 결정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교섭 당시 납치범에 대해 각서 조항에 넣으려고 했다가 삭제한 이유는.
『중공측이 처음에는 범인 인도를 주장한 조항을 넣자고 했으나 철회했고 또 이것은 어디까지나 협약상 우리의 주권행사에 의해 중공측에 통고하는데 그칠 수 있는 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납치범에 대한 한·중공·자유중국간의 관계에서 일부에서는 납치범이 아니라 납치자라고도 보는데요.
『그 문제는 아주 분명합니다. 삼자는 다같이 헤이그 협약의 당사자이므로 자유중국에서도 하이재커들을 범죄자로 적용해야 합니다.』
-심도 수석대표에 대한 평가는.
『그의 65세의 나이가 얘기하겠지만 정중하고 신중하고 노련한 전형적인 중국인다운 풍모를 보였습니다. 공산주의 국가 관리인데도 북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여유가 그의 몸에서는 풍겼읍니다.』
공 차관보는 외무부 내에서 노련하고 냉철한 직업외교관으로 과거 한일 국교정상화·요도호 사건·베트남 억류 한국인 인도 교섭·한일 경협의 실무자 또는 협상자로 이름을 날렸다.
큰 외교적 사건 현장에는 우연하게 있었다는 그는 참모로서는 1급이라는 평을 받고 있으나 초대면인 사람에게는 약간 어려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경기고와 서울대법대를 나와 통역 장교 출신으로 53년 외무부에 들어와 동북아 과장, 아주국장, 카이로 총영사, 정무차관보 등을 지냈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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