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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무산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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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3일 오전 9시 국내 증시가 열리자마자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하한가(15% 하락)로 직행했다. 이 회사 주가는 이날 내내 하한가(25만5000원)에서 머물다 장을 마감했다. 반면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주가는 11.55% 급등한 26만5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두 회사의 희비를 가른 건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 무산’ 사건이다.

 전날 장 종료후 정몽구(77)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의선(45)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 지분 13%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하려 했다. 국내·외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12일 종가(30만원)보다 7.5~12% 할인한 26만4000~27만7500원에 내놓았다. 모두 1조3000억~1조4000억원 규모였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13일 개장 전 이 가격에 현대글로비스의 주식을 사겠자는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여파로 현대글로비스의 주가는 급락했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현대모비스는 급등했다.

 금융투자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로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의 합병 또는 주식 스왑을 꼽아왔다. 하지만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주식 매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유는 “(지배구조 개편이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조치”라고 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30% 이상인 기업이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 규모가 200억(또는 연매출의 12%)를 초과할 경우 위반금액의 최대 25%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두 회사를 합병하면 세금 낼 필요 없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주식 매각으로 인한 양도세(매각 차익의 20%) 부담이 일감몰아주기 증여세(200억원,추정치)보다 훨씬 크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시장엔 현대차 대주주가 이번 매각을 시작으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모두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팽배했다. 이렇게 되면 계속 떨어질 게 뻔한 현대글로비스 주식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이 블록딜을 무산시킨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현대차 그룹의 소통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매각 사유나 미래 가치에 대한 설명 없이 갑자기 매각을 추진하면 어느 투자가가 나서겠느냐는 것이다. 송성엽 KB자산운용 전무는 “시장에선 모비스와 글로비스의 합병을 예상하고 있었다”며 “현대차가 이번에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글로비스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언급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룹 관계자는 “어떤 경우에도 정 회장 부자가 글로비스의 최대 주주 지위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시장의 의구심을 잠재우려 애썼다. “이번 블록딜이 성사되지 않은 것만 봐도 경영권 승계를 위해 글로비스 지분을 팔아 현대모비스 지분을 산다는 증권업계 일부의 시나리오가 사실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고도 주장했다. 블록딜 재추진에 대해선 “현재로선 계획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블록딜 무산으로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제재 법안은 1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다음달부터 적용된다. 제재를 피하려면 정 부회장 측은 이달 말까지 지분을 팔거나 몰아주기 물량을 줄여야 한다. 현대차그룹 측은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비율을 2012년 35%에서 지난해에는 23.8%(9월 말 기준)까지 낮췄다”며 “이번 블록딜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일시적인 현상인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규·이수기 기자

배경 설명 없이 급하게 추진
시장선 글로비스 포기로 봐
현대차 "대주주 지위 계속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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