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중공인 접대와 국민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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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기 불시착 이후 신문사에는 독자들의 상의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우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회귀한 요리는 무엇이며, 귀빈이라도 맞은듯 꽃다발은 또 왜 바쳐야 하느냐』는 것이다.
6·25동란때 참전, 부상했다는 한 상이군인은 『30년전 우리와 적대해서 싸웠던 그들을 보면서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모든 것을 잊은듯, 그들을 이처럼 극진히 대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냐』고 했다.
공중납치라는 불가항력의 재난으로 우리 땅을 밟은 승객이나, 그들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달려온 대표단은 우리에게는 분명히 「손님」임에 틀림없다.
불청객일지라도 손님을 환대하는 것은 전통적인 우리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불시착 중공여객기와 그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은 서로의 응어리졌던 과거를 매듭짓는 계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손님」을 대하는 「주인」 입장이상의 신중함과 의연함이 필요했다. 중공정권수립 후 최초의 공식접촉이었고, 그것은 앞으로 예상되는 접촉과 관계에 하나의 선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배려는 충분했다고 볼 수 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5일 휴전선을 넘어 우리기지에 불시착한 중공여객기는 분명히 우리의 영공을 무단 침범했다. 그것이 납치라는 재난에 의한 것이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납치행위 자체마저 그들이 책임졌어야할 사람들에 의한 것이 아니었던가.
짚고 넘어가야 할 이같은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덮어둔채 호텔에 도착할때 그들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어울리지 않는 환영행사를 벌인 것은 아닌지. 그것은 단순한 호텔측의 투숙객에 대한환영의 표시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들이 9일 새마을운동 본부에 둘렀을 때도 비슷한 환영행사가 벌어져 취재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우리의 이같은 분위기 속에 7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역사상 최초의 중공대표단은 한마디 사과없이 납치범을 내놓으라는 투였다. 30여년전 서로가 피를 흘렸던 과거를 사과하라든지 하는 요구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영공을 침범한 자국기의 행이만은 우선 사과하고 대화를 시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불시착 다음날 전달된 우리측의 회답내용이 지나치게 서두른 나머지 소홀하지는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떻든 6일간의 「중공기 드라머」는 비교적 원만하게 끝났다지만, 손님은 환대해야한다는 생각이 지나쳐 그들을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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