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색 다른세상] 국기를 보면 나라가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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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생각나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휘날리던 학교 운동회의 만국기가 그것이다.

국기는 그 나라의 자연과 역사, 민족의 기질을 축약해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만국기를 보면 알 수 있듯 국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은 색의 황제로 불리는 빨강이다. 자연의 상징인 녹색과 파랑이 뒤를 잇는다.

먼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빨강을 보자. 같은 빨강이라도 그 의미는 나라마다 다르다. 태양의 빨강, 혁명의 피를 상징하는 빨강, 그리스도교의 빨강, 이데올로기의 빨강, 용맹의 빨강 등이 있다.

왜 그런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인간의 색 감정이 자연환경이나 역사.종교.인문.지리적인 조건의 차이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도에 따라 달라지는 기후의 영향이다. 대체로 빨간색을 선호하는 것은 빨강이 태양과 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태양과 가까운 적도 지역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적도 지역에 사는 사람일수록 눈에 적색 시세포가 발달돼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장파장인 빨강.주황.노란색의 미묘한 차이까지 느낄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빨강.주황.노란색을 아름답게 느낀다. 반면에 극지방의 흰 눈 속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상대적으로 백색 시세포가 발달돼 있고 따라서 백색의 미묘한 차이까지 구분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열대지방 사람은 덥기 때문에 차가운 흰색을 좋아하고 극지방 사람은 흰색 계열보다는 따뜻함을 느끼는 빨간색 계열을 찾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다시 국기로 돌아가 보자. 국기는 자연과 역사, 인문지리적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남미나 아프리카의 경우 풍성한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지역의 국기는 녹색과 파랑이 주조를 이룬다. 남미나 아프리카 축구선수 유니폼도 녹색이 많다. 녹색과 파랑의 의미는 자연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다.

반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경우를 보면 각 나라의 국기 속에 자연 환경보다는 그 나라의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프랑스국기인 청.백.홍 3색기는 프랑스혁명이 지향한 자유.평등.박애를 뜻한다. 검정.빨강.노랑의 가로 3색 깃발인 독일 국기는 나폴레옹과의 전쟁시 나폴레옹과 맞서 싸웠던 프로이센 의용군의 군복 색깔에서 연유하며 외침에 대항하고 국가 통일을 기원하는 상징의 색이다. 유니언잭으로 알려진 영국 국기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깃발을 조합한 것이며 기본적인 도형인 붉은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순교를 상징하고 있다.

중동지역을 보자. 사우디아라비아 국기는 "알라신 외에 신은 없고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다"라는 글이 녹색 바탕에 흰색으로 적혀 있고 파키스탄 국기는 이슬람의 녹색바탕에 흰색의 초승달과 별이 새겨져 있다. 쿠웨이트.요르단.이라크 국기도 이슬람의 녹색, 투쟁과 용기의 빨강, 평화의 상징인 흰색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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