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가정의 역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5월-이제 그 침울했던 4월로부터 벗어나 새달로 접어든다. 허욕과 무모, 타락과 비정으로 얼룩진 인문사를 외면하듯 신록은 어김없이 미풍에 흔들리며 해맑은 태양 속에서 반짝인다. 대자연의 합창이다.
5월은 「어린이날」「어버이날」「성년의 날」이 모두 모여 있는「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이번 가정의 달은 대구의 한 디스코홀에서 일어났던 10대청소년들의 참변과 한 철부지 어린이까지 전속독살사건에 휘말려 들어간 사건에 이어 맞게 되는 것이어서 더욱 우리에게 가정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갖가지 행사와 잔치가 베풀어지고 들뜬 분위기로 술렁댄다. 올해도 예외일수 없이 이 한달 동안 많은 어린이와 어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다.
그러나 「가정의 달」의 의의가 며칠간의 호화로운 축제로 끝나버려서는 안 된다. 그런 경고와 호소의 필요성은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높아만 가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할 때』와 『아빠 엄마가 집에 일찍 들어올 때』가 거의 7할로 응답했고, 싫어하는 것으로는『엄마와 아빠가 싸움하는 것』『엄마가 집에 없는 것』이 약4할을 차지했다. 아이들은 화목한집안분위기 속에서 부모와 함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애정을 갈망하는 것이다. 갈망한다는 것은 곧 채워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날로 늘어만가는 청소년의 비행도 가정의 결손이나 부화에서 주된 원인으로 추적되고, 범법자들의 성장과정을 캐보면 대체로 불우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밝혀진다.
성장기의 가정환경이 인문의 품성과 항동양식의 형성에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뜻이다. 더우기 오늘의 교육풍토는 학교의 역할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교사의 훈도는 학생들이 학교 문을 나서자마자 힘이 미치지 않는다. 그만큼 가정의 교육적 기능이 그 어느 때 보다 더 절실히 요청된다.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강화하려면 부모의 권위와 수범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도덕적으로 건전한 인식과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로는 자식에게 건전하고 성실한 생활을 강조하면서 자기의 실제 행동은 그렇지 못할 때 그 부모의 권위는 물론 사회도덕의 지주마저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대개방사회에서 부모나 기성세대의 행동이라 해서 비밀에 싸여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도시아동들의 부모관을 알아보기 위한 한 작문모집에 응모한 글 가운데부모를 존경한다는 내용이 1백명 중 겨우 2명에 불과했다. 비록 과장된 통계라고 해도 현대가정의 위기를 엿볼 수 있다.
치열한 경쟁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가장의 귀가 길은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싸여있다. 『부엌에만 파묻혀 살수는 없다』고 사회활동이나 모임에 적극적인 주부들에게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가정을 사랑과 화기가 넘치게 가꾸고 보호하는 것도 이보다 결코 뒤질 수 없는 것이다. 자녀를 외부의 유혹과 탈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정뿐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화려한 행사, 일시적인 세제보다는 장래의 동량들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무엇부터 서둘러야할지를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