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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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인이 우유에 독물을 타 남편에게 마시게 했다. 남편은 자기의 죽음으로 받게 될 보험금으로 아내가 행복해지길 빌며 죽어갔다. 이것이 이번 독살사건의 시말이다.
진위는 차치하고 지금까지 아내가 자백한 대로라면 남편은 부인과 자녀를 위해 목숨을 희생했다. 비록 그 정성은 하늘에까지 사무칠 것 같으나 과연 이런 것이 사람의 도리일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편의 목숨을 끊는 아내는 과연 또 누구인가.
도대체 우리에게 부부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독살사건은 큰 충격과 회의를 던져준다.
부부는 남남이자 한 몸이다. 그래서「부여부일체」라고 한다. 모순될 것 같으면서 길코 모순되지 않는 이 관계가 인류생활을 연면시키는 기초가 돼 왔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는 가족관계에서도 부모와 자녀사이보다 더 긴밀한 것이 바로 부부관계다. 중용에선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되며 지극한 데까지 이르면 천지를 살필 수 있다』고했다.
이런 부부관계가 현대에 들어 위기를 맞는 것은 바로 「한몸」보다 「남남관계」를 강조한 탓이 아닐까.
이번 사건의 경우 이들 부부가 빚에 몰려 극한상황에 이르렀다고 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동반자살을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부부관계의 기본이 되는 사랑이 아직도 식지 않았다면.
그러나 동반자살 자체가 생명의 존엄성을 저버리는 지탄받는 행위임엔 틀림없다. 하물며 이번 경우처럼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편을 독살하는 행위에는 더 할말이 없다. 이그러진 부부상, 사회적 병리가 한 가정에 응집된 현상을 보는 것 같다. 서로 존중하며 아끼며 합심하는 부부상이 더욱 절실해 진다.
고대 중국에선 부부를 항려라고 했다. 남편은 곧고 (곧을항)아내는 곱다(고울려)는 뜻이다. 남편은 정의로우며 아내는 마음씨 착하다는 부부관이다.
이런 부부는 비단 가족 안의 관계 뿐 만이 아니다. 대 사회 관계로까지 연결된다. 비틀거리는 현대의 부부관계를 올바로 잡는 일은 곧 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된다.
부부의 위기를 초래하는 일은 많다. 상호불신, 부조화, 불성실 등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회에 팽배한 물질 만능주의가 부부관계를 해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배우자의 경제적 능력이 어느새 결혼 조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번 경우도 보험금을 타려는 욕심이 부부를 파탄에 몰아 넣었고 살인까지 저지르게 됐다. 다른 것은 다 오염돼도 부부관계가 깨끗하길 바라는 마음은 도처에서 배반당한다. 끔찍한 사건을 들어 올바른 부부상을 그려보는 일은 착잡하긴 하나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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