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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슛 1000개 … 타고난 득점기계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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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1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프로농구 올스타전 이벤트로 ‘시대를 초월한 슛 대결’이 열렸다. ‘득점기계’ 신동파(71·전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슛도사’ 이충희(56·전 동부 감독), ‘람보슈터’ 문경은(40·SK 감독)이 초청됐다.

 신 전 부회장이 “어깨 통증이 심해 팔을 잘 들지 못한다. 의사가 선수 때 너무 많은 슛을 쐈다고 하더라”며 기권했다. 이 전 감독은 “전설과 겨뤄보고 싶었는데요”라며 아쉬워했다. 이 전 감독은 약속시간에 5분 늦은 문 감독을 보고 “따로 훈련을 하고 온 모양이네. 경은이가 승부욕이 강하지”라며 웃었다. 문 감독은 “대선배님들 틈에 제가 끼어도 될지…”라며 머쓱해했다.

 이벤트는 3점슛 1개, 자유투 3개, 골밑슛 1개를 성공하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전 감독이 25초04만에 성공해 문 감독(27초94)을 꺾었다. 본지는 전설적인 슈터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농구 슈터의 계보를 잇는 이충희·문경은이 10일 잠실체육관에서 시대를 초월한 슛 대결을 펼쳤다. 이충희가 5개의 슛을 25초 만에 성공해 27초 걸린 문경은을 제쳤다. 신동파 는 어깨 통증으로 기권했다. [사진 KBL]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969년 아시아선수권 결승(필리핀전)에서 50점을 넣은 신 부회장은 필리핀에서 아직도 유명인사다.

 이충희: 학창 시절 라디오 중계로 들었다. 캐스터가 ‘신동파, 공 잡았습니다. 슛~ 골인~’이란 말만 반복했다. 정말 득점기계였다.

 문경은: 청소년 대표 시절 필리핀 원정을 가서 공원에서 슛 훈련을 했다. 필리핀 사람들이 와서 ‘신동파도 왔냐’고 묻더라.

 신동파: 그땐 나를 막다가 수비수 세 명이 5반칙 퇴장을 당한 적이 있다. 나중엔 센터가 날 막더라. 센터의 외곽 수비가 서툴러서 난 한쪽 눈을 감고 했지. 허허.

 - 이 전 감독은 86년 세계선수권 브라질전에서 45점을 넣었다.

 신: 충희는 수비 혼자서 절대 못 막았다. 슛 타이밍이 정말 빨랐다. 경은이는 상대에게 공포를 안겼지. 오픈 찬스에선 거의 100% 들어갔거든.

 문: 이 선배님을 흉내내면서 농구를 배웠다. 연세대 시절 선배님의 은퇴경기 때 수비를 했는데 당시 선배님은 무릎이 아파 보호대를 차고 나왔다. 그런데도 날 제치고 득점을 올리셨다.

 이: 세계선수권 후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미국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입단 제의가 왔다. 하지만 대한농구협회가 서울 아시안게임에 나가야 한다고 반대해 무산됐다.

왼쪽부터 이충희, 신동파, 문경은.

 - 슛은 타고나는 건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는 건가.

 신: 학창 시절 점프슛 87개를 연속으로 성공했다. 하나를 놓치면 약이 올라 재도전했다. 100개 중 99개 성공이 최고 기록이다.

 이: 중3에서 고1 올라갈 때 10개월 동안 매일 중거리슛 1000개를 던졌다. 밤에 체육관에서 혼자 슛 훈련을 하면 관리자가 전기료 아깝다며 불을 껐다. 창문을 모두 열고 희미한 달빛에 의존해 슛을 던졌다. 나중엔 눈 가리고 던졌는데도 들어가더라.

 문: 두 분 이야기를 전설처럼 전해 듣고 나도 따라 했다. 대학 4년간 거의 매일 1000개씩 던졌다.

 - 한국의 슈터 계보는 신동파-이충희-고(故) 김현준-허재(50·KCC 감독)-문경은으로 이어진다고 봐야 하나.

 이: 슈터는 한결같아야 한다. 기복 없이 매 경기 평균 25점 이상을 꾸준히 넣어야 한다. 허 감독은 돌파 능력도 갖췄으니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봐야 한다.

 - 문 감독 이후 슈터 계보가 끊긴 것 같다.

 신: 지난해 대표팀 훈련장을 찾았다. 유재학 감독에게 ‘슛 100개 중 90개 이상 넣는 선수가 몇 명이냐’고 물었다. 유 감독이 깜짝 놀라며 ‘조성민(32·kt)과 김성철(39·은퇴)이 80개를 넣습니다. 70개 미만 선수들도 있습니다’고 하더라. 그나마 조성민이 낫다. 요즘엔 오픈 찬스에서도 못 넣는다. 그러니 한 쿼터 최소 득점(kt 3점), 한 경기 최다 점수차 패배(삼성 46-100)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김민구(24·KCC)는 농구를 계속 할 수 있나?

 문: 민구가 참 안타깝다. 정말 재치 있었는데…. 방성윤(33)도 아깝다. 내 최다 3점슛(1669개)도 깰 거라 생각했다. (김민구는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재활치료 중이고, 방성윤은 잦은 부상 탓에 2011년 은퇴했다.)

 - 프로농구는 2000-01시즌 이후 14시즌 연속 야투율이 40%대다. 올 시즌도 45.3%다.

 문: 농구대잔치 시절에는 포워드가 20점 이상 넣었다. 요즘 외국인 선수가 공격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 슈터가 퇴보할 수밖에 없다. 훈련 좀 하려고 하면 선수들이 무릎이 아프다고 한다.

 신: 슈터는 30~40%의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 재능만 믿고 나머지 60~70%를 노력으로 채우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한국 선수들은 슈팅 자질이 있다. 그걸 끄집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금 선수들 훈련량은 과거에 비해 3분의 2도 되지 않는다. 슛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슈터 계보를 이을 수 있다.

 ◆김선형 올스타전 2년 연속 MVP=11일 올스타전에서 주니어 드림팀(28세 이하)이 시니어 매직팀(29세 이상)를 105-101로 꺾었다. 16점·6어시스트를 올린 김선형(27·SK)이 2년 연속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앤서니 리처드슨(32·동부)과 문태종(40·LG)이 각각 덩크슛왕, 3점슛왕에 올랐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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