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울린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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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련은 언제까지 재능있는 음악가들을 해외에「유산」시킬 것인가. 아마 공산체제가 존속하는한 그치지 않을지 모른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L」(Mastislav Rostropovich)도 예외는 아니다. 그가 69년부터 4년동안「솔제니친」을 자기 별장에 보호하자 소련당국은 그의음악활동을 일절 금지시켰었다.
이미 명성있는 첼리스트로, 또 지휘자로 해외연간 경험을 쌓은「로스트로포비치」는 이 가혹한 조처에 항의,예술에 대한 공산당국의 통게 철폐를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브례즈녜픈 에게 발송했다.
이것이 바로 소련시민권을 박탈당한 직접적인 윈인이었다. 지난 78년의 일이다. 결국 소련은 모하나의 음악가를 잃었다.
올해 57살인「로스트로포비치」가 음악에 재능을 나타내기는 벌써4살 때부터.어머니에게서 작곡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8살때는 모스크바 어린이 음악학교에서 첼로를 공부했다.이때의 스승은「쇼스타코비치」그는 제자를 위해 첼로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젊은「로스트로포비치」는 유럽의 음악제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국내에서도 fp닌상,스탈린상등을받았다.
70년대 전반은 그에게는 투쟁의 세월」이었다. 소련국내에서 음악활동이 중지된 그를 미국은 워싱턴 내셔널의 지휘자로 초빙했다. 77년의 일이었다. 바로 다음해에 시민권을 잃었으나 지금까지도 그는 소련시민임을 자부한다.
『내가 소련을 등진 것이 아니라 소련이 나를 버렸다. 언젠가는 나를 다시 시민으로 받아 들일 것이다』
결국 그는 코즈머폴리턴이 됐다. 스위스여권으로 해외연주여행을 하고 집은 뉴욕과 파리 두군데. 망명아닌 망명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77년 타임지는 그를 표지기사로 다루면서 『그가 갤로앞에 앉을 때 신은 미소지으며, 연주를 시작하면 신은 운다』고 격찬했다. 고전음악을 자기류의 열정속에 용해한다는 비판도 있으나 그때문에 더욱 고전음악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는 공감도 산다.
결국 그는 음악가로도 성공했고 자유를 사랑하는 용기있는 인간으로도 성공한 셈이다.
오늘날 음악에 관한한 소련은 벽이없다.
고전음악은 물론 퇴폐적이라는서방의 대중음악도비교적 자유롭게연주된다. 그런데도「음악인」들은 계속 소련망을 떠난다. 기수격인 「로스트로포비치L 말고도 첼리스트「가린· 조르주앙」, 피아니스트「옥사나·야브룬스카야」등 2명의 여성 연주자가 서방 음악계를 휩쓴다.
25일,그의 두번째 서울공연을 맞으며 예술과 자유의 성숙한 화음을 음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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