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택지개발… 무주택자위해 마지막 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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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입지전적 인물의 대명사로 곧잘 불리던 국졸도백 김수학전국세청장 (56).
36년간의 긴 공직생활끝에 귀거래사를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간지 11개월만에 갑자기 한국토지개발공사 사장으로 나타났다.
경북지사·국세청장·명예면장·토개공사장으로 끝없이 변신하는 그의 저력은 무엇일까.
『맡은 일만은 최선을 다해 완수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되려고 공부를 해야겠지요』
그는 항시 주어진 일에 불만을 갖지않고 묵묵히 일해 왔다. 어떤 일이든지 싫거나 어렵다고 피하질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기회가 주어지더라는 것이다. 「전혀 뜻밖이었옵니다. 고향에서 노모와 함께 들에 나가 일을 하다 연락을 받았읍니다.」
지난해 5월21일 국세청장직을 물러난뒤 고향인 경북월성군외동읍에서 노모(80)와함깨 농사를 지으며 명예면장으로 봉사해 왔었다.
화려했던 지난날에 연연하지않고 고향에서. 그동안 모시지 못했던 노모와함께 묵묵히 농사나 짓던 그의 남다른 일면. 끈질진 집념, 무리하지 않는 합리적인 성격때문에 다시 그가 공직에 나오게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취임한 사람이 무엇을 알겠읍니까. 토개공법에 있는 선립목적을 춫실히 수행하도록 공부하고 노력하겠읍니다』
값싼 택지를 개발, 공급하는 것이 토개공의 임무라는 것외에 토개공에 대해 아는바가 없다는 그는 공무원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일할생각이란다.
사실 그는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남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다.
내무부 사무관시절에는 틈틈이 시간을 내서 「지방회계제도」란 책을 썻으며, 경주군청서기로 있을때 독학으로 변호사예비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등으로 높아지고 있는 땅에 대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읍니다』
그는 집없는 사람들과 집값 안정을 위해 값싼 택지를 개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 알고 최선을 다할것을 다짐했다.
억세게 관운이 좋기도 했지만 요직을 두루 거친 그에게 가장 인상이 남는 시절은 경북지사시절.
국졸이 학력의 전부인 그가 처음 공직에 몸담았던 곳에 도백으로 부임, 몸과 마음을 바쳐 일을 했었기 때문이란다.
그때 그는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물지게를 직접 지고 가뭄과 싸우기도 했다.
목민과 안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실감했단다. 경북지사를 끝으로 내무부를 떠나국세청장이 됐을 때도 사람들은 의외의 인사로 놀랐었다. 『사실 세금에 대해 별로 아는바도없고 조세행정경험도 없었지요』
그는 이때 또 예의 특기를 발휘,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었단다. 2년간은 세정에 관한책만 읽었단다. 세정과 전혀 무관한 그가 국제청장이 된것도 그의 이같은 노력과 청렴결백을 높이 산때문이었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국민학교만 졸업하고도 대구시장, 충남·경북지사, 국세청장, 토개공사장등서을두루 거치는 동안 그는 후배 공무원들에게 꿈과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나도하려면 할수 있다』는 꿈을 갖게끔 해주었다.『나도 욕심이 있는 사람이지요. 남이 승진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 열심히 했지요. 하니까 되더군요.』
그는 남을 따라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 결코 남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이같은 겸손과 시골 촌장의 체취를 물씬 풍기는 외모와 말씨등은 모두에게 친근감을 갖게한다. 전국의 땅을 주무르는 토개공을 그가 어떻게 주무를지 기대된다.
뚜렷한 취미는 없고 두주부사. 부인 주경이씨(50)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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