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종금 돈받고 경제수석 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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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말~2000년 초 예금인출 사태 등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종금이 구명(救命) 로비를 한 '몸통'은 청와대였음이 드러났다.

민주당 한광옥 최고위원이 대통령 비서실장 재직 때인 2000년 초 나라종금으로부터 돈을 받고 이기호 전 대통령 경제수석을 소개시켜준 것이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것이다.

나라종금이 퇴출 저지를 위해 이용근 당시 금감위원장(4천8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그리고 청와대 핵심 실세에게 로비 공세를 했음이 결국 드러난 셈이다.

검찰이 13일 韓최고위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적용한 혐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뢰. 알선수뢰란 공무원이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일을 알선하는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韓최고위원은 2000년 초 나라종금 대주주인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과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이 비서실장 집무실로 찾아오자 이기호 전 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을 만나주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李전수석은 자기 집무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검찰은 韓최고위원이 두 사람을 만난 장소도 비서실장 집무실과 공관, 관악구 봉천동 자택 등 여러 곳이었다고 밝혔다. "비서실장 공관에서 돈도 전달받았다"는 설명도 했다.

검찰은 또 韓최고위원이 15대 국회의원 시절인 99년 하반기 "나라종금이 영업을 잘할 수 있도록 금융 당국 등에 이야기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것은 특가법상 알선수재에 해당한다고 봤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그가 나라종금으로부터 받은 돈이 더 있는지와 경제수석실이나 금감위에 나라종금 관련 사항을 선처하도록 압력을 넣었는지를 조사한다는 방침이어서 韓최고위원의 혐의는 더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나라종금은 2000년 1월 2차로 영업정지 조치를 받았고 같은 해 5월에 퇴출됐지만, 금감위 등이 나라종금의 각종 불법행위를 알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그동안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李전수석은 검찰에서 "나라종금은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도 "나라종금을 위해 부당한 지시를 내린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로비는 받았으되 힘을 써주지는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편 검찰은 나라종금으로부터 역시 돈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민주당 박주선 의원 등 다른 정치인들에 대한 소환 조사도 계속할 예정이어서 사법처리 대상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구속영장이 기각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에 대해서는 金전회장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는지 보강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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