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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국민경제의 평형수는 일자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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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전상훈
이지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대한민국 경제를 한 척의 배로 가정해보자. 강철덩어리인 배가 물에 뜨고 안전하게 항해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과학적 설계다. 승선할 사람과 화물의 최대치를 싣고도 안전하게 항해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배의 설계를 경제문제로 비유하자면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안정적인 경제구조를 짜는 것이다.

 효율과 안전의 균형은 항해할 바다의 특성에 맞게 선택해야 한다. 안전항해의 핵심은 평형수를 설계주문대로 채우는 일이다. 국민경제의 평형수는 ‘일자리(소득)’다. 일자리가 적정하게 유지되어야 대한민국호는 어떤 파도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람과 화물을 더 많이 적재해서 돈을 벌겠다고 평형수를 덜 채우고, 설계기준을 어겨 증축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국민경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단기 부동산 경기 부양책’, ‘카지노 등 사행산업 활성화’ 등은 설계톤수보다 불법증축하고 그 무게만큼 평형수를 빼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는 배의 수입이 늘어나는 듯 하지만 항해 중에 필연코 사고를 부른다.

 평형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승객과 화물은 눈에 보인다. 그래서 유혹에 빠진다. 보이지 않는 것은 줄이고, 보이는 것은 늘리려 한다. 일자리와 소득은 단기간에 늘어나지 않는다. 사행산업과 부동산투기는 단기간에 경기부양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연평균 3%의 저성장 국가이다. 천하에 용 빼는 재주가 없는 한 저성장 기조는 한동안 유지될 것이다. 더디 가더라도 일자리 늘리기와 소득 향상을 핵심으로 해야한다. 일자리 나누기와 소득재분배 움직임을 확산시켜야 한다. 대졸자 이상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갈수록 부족한 상황이 예견되고 있으므로, 현행 교육정책의 초점을 대학입시에서 고교 및 전문학교 직업교육으로 방향전환해 나가야 한다.

 더디 가는 것에 대한 아우성이 없을 리 없다. 이 아우성을 다독이며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고통을 함께 이겨내자고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오로지 정부는 ‘칠흑같은 저성장 터널의 현실’을 인정하고 더디 가더라도 단 한 개의 일자리, 단 100만원의 소득을 더 얻을 수 있는 ‘미생’의 길을 안내해야 한다.

 대한민국호의 선장은 대통령이다. 선원들은 정부와 국회이다. 선장과 선원이 대한민국호를 불법증축하여 과적하고 평형수를 뺀 채 대양을 항해하려 한다면 누군가는 이런 행위를 제어해야 한다. 누가 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호의 선주들인 국민만이 할 수 있다. 그러나 5000만이 넘는 선주들이 자신이 선주인 줄도 모른채 살아가고 있다. 선거 때만 선주 대접을 받는 듯 하지만, 선거철만 지나면 불법증축된 배에 짐짝처럼 쳐박혀 배멀미를 하는 3등실 승객으로만 대우받고 있다.

 2015년은 선거가 없는 해이다. 국민들이 선주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해이다. 선주들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보일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선주로서 선장과 선원들에게 더디 가도 안전하게 항해하라고 명령해야 한다.

전상훈 이지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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