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자체는 위기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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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경제부장 간담회에서 경제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주 독일 대사관에서 만든 보고서('독일 경제정책 변천 과정')를 꼼꼼히 읽었다고 한다. 27일 주요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이 보고서를 e-메일로 보내 미리 읽어보도록 했다.

이 보고서는 '너무 비대해진 사회복지제도' '동.서독 통일이 남긴 것' '실업문제와 성장둔화' '슈뢰더의 개혁정책-어젠다(의제) 2010' '연방제-양원제는 개혁의 걸림돌인가?' 등 독일의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관한 자료를 담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이 정도 수준의 고민은 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이 보고서는 경제정책이 시대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용되고 또 어떤 효과를 낳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대통령이 경제.정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고 논의한 뒤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3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한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체감경기는 가는 데마다 다를 수 있다. 재래시장에 가서 백번 물으면 백번 나쁘다고 얘기한다. 구조조정이 빨리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취약 부문은 언제나 드러난다. 농업은 언제나 위기고, 중소기업은 자기 영역을 확보하지 못했으며, 구조적으로 계속 위기에 처해 있다. 재래시장.영세사업자 등이 위기인 것은 인정하지만 경제 자체의 위기와는 구분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지난해까지 경제 어젠다에 쫓겨왔으나 올 들어 전망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유럽 각국의 정치제도와 경제관계를 분석하는 등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8.31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회에서) 관철되면 상당히 놀라운 결과를 낳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천지개벽하는 것"이라고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 "임기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부동산 정책은) 마지막 '책걸이'까지 하고 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8.31 부동산 대책'의 후속조치와 관련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대책이 확정되는데 1차적으로 힘을 쏟은 뒤 미흡한 부분이나 부작용이 드러나면 보완책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통합적 진보주의자'로 분류한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논쟁은 없고 싸움만 있다. 그러니 결론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반기업 정서를 해소할 방안은.

"(반기업 정서는) 나도 없고 국민들도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당사자가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그 외의 다른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니겠느냐. 반기업 정서 때문에 '기업을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또 약간의 방어논리다. 반기업 정서가 심각해서 기업 의욕이 떨어져 경제가 침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전에 독일 경제 관련 자료를 보내줬는데.

"독일 문제에 대해 보고서를 요구한 이유는 슈뢰더 총리가 불신임을 요청해 선거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 경제 '어젠다 2010'이라는 것이 싸움의 핵심이 아니냐. 문제는 우리에게 '어젠다 2010' 같은 것이 던져져 있는데 '옳으냐'의 문제 이전에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결론을 낼 수 있는가를 내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창출했으면 연정을 제안하기보다 정부가 주체적으로 풀어나가야 되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이 '대통령은 민생에 전념해야 한다'며 연정 거부 명분으로 제시한 '경제 올인(다걸기)론'은 대단히 교묘한 정치논리로 선동정치의 표본이다. 경제 올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옛날 유신시대에 하던 것 아닌가. 지금부터 국방.북핵문제를 다 덮어버리고 매일 경제현장만 다니면서 재래시장 가서 악수 몇 번 하고 사진 찍고, 그렇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

-출산 고령화 문제에 대한 구상은.

"모든 정책을 출산 장려 정책으로 붙여줘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것이 출산 장려의 문제다. 한국 사회에 희망과 자신감을 다시 찾아나가고 미래 정책에 대해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나가 총체적으로 사회를 건강하게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회모델이 유럽형으로 갈 거냐 미국형으로 갈 거냐에 관심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는 측면에서 보면 유럽 모델과 가깝다고 봐야 된다. 출산과 관련돼서는 유럽 모델에 가까울 수 있고 그것이 인구에 미치는 영향도 유럽 모델에 가까울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경제.연금 등을 설계해 나가는 과정도 유럽 모델에 가까워야 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박의준 경제부장 <pakej@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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