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성촌 충남 서천군 화양면 대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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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충남서천군화양면대하리-.
이웃기산·추동리까지 세 마을이 나주정씨만 1백70여호가 옹기종기모여모발을 이룬 「정서방마을」.
기름진 들판을 일궈 농사를 지으며 아낙네들은 섬세한 손끝으로 한산세모시의 전통을 2백여년 쌓아 서천군내에서도 가장 소득이 높은 부자마을이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이 5백만원-.
『서울 미곡상들이 이지방 쌀을 가져다 경기미라고 옷돈을 얹어 팝니다. 쌀맛이 좋을뿐 아니라 논한마지에 쌀 넉섬을 손쉽게 얻으니 옥토중의 옥토지요」
마을 종친회를 이끌고 있는 정낙진씨 (50·서천군 금성국민학교장) 의말.
이마을에 정씨들이 자리잡은 것은 2백40여년전인 조선조 헌종때.
전국에 가뭄이 들고 무서운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떼죽음을하던해 경기도광주에 살던 정씨가문의 총각 정휘신이 일가족을 열병에 잃고 족보한질만을 괴나리봇짐에 챙겨 단신으로 이 고장을 찾아들었다.
인척이되는 광주이씨 집안을 찾아 몸을 의탁한 노신총각은 이곳에서 장가를 들고 채너미(기산)야산아래 짐을 지었다.
그로부터 자손들이 번성, 마을을 이루고 이제는 3개마을에 l백70여가구를 헤아리게 된것이다.
9대 옥당명문의 긍지를 간직한 정씨들은 조선의 여느 사대부집안이 그러했듯이 이곳에서 농사로 생업을 삼으며 대대로 유학을 숭상하는 가풍을 세워왔다.
그러나 이곳 정씨 마을은 전국 어느 양반촌에도 없는 특이한 전통을 세우고 있다.
「전국유일」의 종중교회가 그것.
해방전후부터 마을부녀자들이 하나둘 교회에나가 신앙생활을 하는것을 보고 정금진씨(65)등 집안의 유지들이 주동이돼 종중결의로 마을에 교회를 세웠다.
이름하여「오순교회」.
일찌기 조선조의 천주교박해(을해박해) 때 신앙을 지켜 처형당한 정고종과 그의 부인유소사,아들정철양·정하양·딸정정혜등 일가족5명의 순교를기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교회는 천주교가 아니고 기독교장로회소속.
교회건립에 땅과기금을 내놓은 이 교회장로 정희진씨는 『참된 믿음이 중요하지 교회가 어디 소속인가는 문제가 안되는것 아니냐』 고 말한다.
1백70여 가구가운데 l백여가구가 신자.
그러나 「예수장이」의 독선이나 편협성이 엿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초기 천주교박해의 큰원인이 됐던 조상 제사문제에서도 정씨들은 독특한 태도다.
전통적인 제사음식을 차리지않을뿐 제사를 지낸다.
기독교신앙과 유교전통의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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