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현장, 투기 큰손들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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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8.31 부동산대책 이후 아파트 청약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청약 경쟁률이 뚝 떨어진 가운데 계약률도 예전만 못하다. 다주택자의 경우 양도세.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부담이 커진데다, 투기지역 내에선 주택담보대출 자격이 강화되면서 투자수요가 줄어든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건설사는 분양가를 내리는가 하면, 분양시기를 늦추고 평형 구성도 실수요자 눈높이에 맞춰 재조정하고 있다. 내외주건 김신조 사장은 "청약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될 것이어서 그동안 인기지역이었다 해도 공급이 많거나 브랜드 및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곳은 외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청약.계약률 낮아져=8~12일 청약한 대구시 달서구 월성동 대우 푸르지오 아파트(1824가구)는 3순위까지 경쟁률이 평균 1.02대 1에 그친 가운데 큰 평수인 48.56평형은 미달됐다. 모델하우스 개관 당시 주말에만 3만여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린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관심은 있어도 막상 청약 때는 몸을 사리는 것 같다"며 "지방 광역시는 투기과열지구라도 계약 1년 후 분양권 전매가 가능해 그동안 투자수요들이 웃돈이 많이 붙는 50~60평형대를 노렸지만 8.31 대책 이후 이런 현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초 청약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신창비바패밀리 아파트(1210가구)는 중도금 무이자 융자 조건에도 불구하고 13~15일 진행된 초기 계약률이 절반 수준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투기지역에선 기존에 살던 집에 담보대출이 있으면 그 집을 새 아파트 입주(등기) 후 1년 내에 팔아 대출금을 갚겠다고 사전에 약정해야만 중도금 대출을 해줘 계약을 많이 포기했다"며 "뒤늦게 이 내용을 알고 계약을 해지한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분양 당시 대형(67~108평형)인데다 분양가가 7억~13억원선으로 높아 울산의 '타워팰리스'로 관심을 끌었던 울산시 남구 신정동 롯데캐슬 킹덤(196가구)의 초기 계약률도 절반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10억원이 넘는 초대형보다 7억~8억원대인 67평형의 계약이 더 부진한데, 이는 고급아파트 수요층이 엷은 지방이 종부세 대상 확대(9억→6억 이상) 등 세금강화 방침에 더 민감한 때문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 업체, 대응책 마련 비상=추석 직후 분양하려던 울산시 신정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는 분양시기를 10월 이후로 미뤘다. 이 아파트 역시 60~70평형대로 분양가가 6억~7억원에 이른다. 이 아파트 분양대행사 관계자는 "가수요가 줄면서 실수요만으로 60~70평형대를 팔기가 쉽지 않게 됐다. 추이를 지켜보면서 분양 계획을 다시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말 화성시 봉담읍에서 분양 예정이던 쌍용건설.임광토건 등은 신창의 계약률이 기대 이하로 나오자 분양 일정과 분양가 조정에 고심하고 있다. 임광토건은 분양시기를 다음달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청약수요가 위축돼 분양가와 상품 구성, 마케팅 기법 등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울산시 신정동에 분양 예정인 월드건설은 분양가를 평당 1350만원선에서 1200만원 후반대로 낮추기로 했다. 12~14일 청약한 포항시 남구 SK뷰는 당초 예정보다 평당 6만원 정도 낮춘 평균 529만원에 내놓았다.

한화건설은 11월 말께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분양 예정인 주거용 오피스텔의 경우 투자수요가 많이 찾는 60~70평형대를 줄이는 대신 실수요층이 두터운 40~50평형대를 늘리기로 했다. 이 회사 신완철 부장은 "평형 거품을 빼고, 분양가도 주변 시세보다 높지 않게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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