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환의 배틀배틀] '나' 를 넘어서는 돌파구, 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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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독서의 계절이다. 뛰어난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독서는 필수적이다. 아무리 전략과 전술을 짜내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독서는 종종 돌파구가 된다.

사실 프로게이머들이 직접 서점으로 가서 책을 사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마음도 몸도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다. 대신 팬들이 책을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위의 선수들은 팬들에게 받은 책을 거의 다 읽는 편이다. 책의 내용도 다양하다. 프로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담은 책부터 서정적인 시집과 소설까지 다양하다.

그래도 프로게이머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책은 만화책이다. 프로게이머의 평균 연령대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기 때문이다. 또 경기를 준비하며 받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도 적격이다. 직업의 특성상 쉽게 읽히는 책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렇다고 게이머들이 가벼운 책만 읽는 건 아니다. '삼국지' '손자병법' 등은 프로게이머들의 애독서로 통한다. 프로게임계의 주축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기 때문일까. 부지런한 선수들은 일부러 짬을 내 '삼국지'와 '손자병법'을 읽는다. 전략적 마인드도 기르고, 병법에 대한 생각도 좀 더 진지하게 해볼 수 있다. 나 역시 각종 병법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전략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는 병법서의 내용과 흡사한 경우가 많다. 어떤 선수들은 역사적인 전투와 세계적인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읽기도 한다. 위인들로부터 배우는 전략적 마인드는 촌각을 다투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살이 되고 피가 된다.

2005 SKY 전기 프로리그에서 SK 텔레콤 T1 선수단과 프런트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우리는 전기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합 전에 우리는 한 명도 빠짐없이 '하이파이브'란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책이 가져다주는 의미를 공유했다. 그 한 권의 책은 팀원들에게 목표를 일깨워 주었다. 게다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도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진정한 팀워크란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전기 프로리그 우승의 초석은 바로 그 한 권의 책이었다고 말이다.

나도 노력은 하지만 일상에 쫓겨 독서를 생활화하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독서의 중요성은 절감한다. 풍부한 간접 경험이 녹아있는 책은 프로가 가져야할 마인드와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만으로 큰 선수가 되긴 힘들다. 책에는 '나'를 넘어서는 돌파구가 있다.

<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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