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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갑을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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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즐겨 보는 TV 코미디에 ‘갑과 을’이라는 코너가 있다. 인터넷 AS 기사가 고객의 매장(식당)을 방문한다. 고객은 억지를 부리며 기사를 닦달한다. 진상 고객의 갑질이다. 수리를 끝낸 기사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데, 이번에는 손님이 된 그의 갑질이 시작된다. 당한 만큼 똑같이 되갚아 주자 객석에선 갈채가 쏟아진다.

 우리 사회의 민감한 환부를 드러내는 코미디다. 각종 수퍼갑들의 활약상을 봐온 우리로선 갑질을 응징하는 쾌감이 있다. 또 갑이었다가 일순간 을로 전락하는 내용이니 결국은 모두가 을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을의 갑질은 원래 갑 못지않게 폭력적인데, 알고 보면 같은 을끼리의 폭력이니 자기모멸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연말 뜨거웠던 드라마 ‘미생’의 흥행 동력도 ‘우리는 모두 을’이라는 거대한 열패감이었다. 극 중 장그래와 똑같은 800만 비정규직뿐 아니라 멀쩡한 직장의 멀쩡한 정규직까지도 ‘언제든 을’이라는 데 공감했다. 한국 사회를 짓누르는 불안증의 원천이다.

 2012년 강남의 사교육 열풍을 다룬 드라마 ‘아내의 자격’에서 486 출신의 방송기자 상진(장현성 분)은 “세상은 갑과 을로 나뉘고, 내 자식만은 갑이길 원한다”며 강남으로 이사 갔다. 486세대의 마지막 위선을 벗어던진, 솔직하지만 참담한 대사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렇게 강남에 입성해 등골 휘는 사교육에 매진한들, 그래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대입보다 몇십 배 어렵다는 취업에 성공한들 ‘우리는 언제든 을’이라는 불안감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국이다.

 새해 벽두부터 너무 우울한 얘기만 늘어놨다. 차라리 ‘우리는 언제든 을’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제는 모두가 갑을 지향하기보다 을로서도 충분히 가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갑이 되기 위해 위만 보며 달려왔다면 이제는 그런 수직적·팽창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을로서도 충분히 살 만하고, 을이라고 갑은 물론 을끼리도 괄시하지 않는 연대와 공존의 삶. 그게 저성장시대의 생존방식일 수 있다.

 누군가 “갑오년과 함께 갑들이 가고, 을과 미생들이 완생을 이루는 을미년이 왔다”고 했다. 기분 좋은 덕담이다. 그러나 을에 만족하는 체질 개선이 말처럼 쉽지 않으니 우리에겐 새로운 갑을전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을이어도 내 자식만은 갑이길 위해, 나는 병 또는 정이 돼도 좋다’는 부모들의 희생 신화 부수기 같은 것들 말이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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