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정원제와 대학의 재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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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가 졸업정원제에 의한 작년별 탈락비율을 각 대학의 실정에 따라 시행토록 일임키로한것은 졸업정원제의 운용에 융통성을 보인 조치로 평가된다.
이규호 문교부장관은 지난5일 경인지역 대학총장회의에서 졸업정원제가 실시된다해도 학칙개정을 통한 전과, 전학 및 유급등의 조치는 가능하다고 밝히고 83학년도부터 각 대학에서 학년별 탈락비율을 재조정한 내용의 학칙개정 승인요청을 해오면 이를 모두 승인해 주기로 했다.
이장관은 또 면학분위기를 조성, 수준 높은 대학졸업생을 배출하자는 졸업정원제의 근본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안에서 각 대학의 실정에 따라 학년별 탈락비율을 자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보도되었다.
졸업정원제 실시에 따른 탈락비율이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대학의 자율에 맡져진것은 일단 수긍이 가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제도가 안고있는 부정적인 요인을 제거한것이 아니라는 점을 부인 할 수는 없다.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살림으로써 대학의 질을 높이고 심각한 사회불안의 요소였던 재수생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해 보려는 것이 대학 졸업정원제였다.
그러나 이제도의 첫 적용에 따라 일부 2학년 학생들이 3학년 진급을 못하고 캠퍼스를 떠나는 지금 이순간에 와서보면 중도탈락의 문제가 재수생 문제 못지 않은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생각을 금하기 어렵다.
탈락비율이 학과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전과도 할 수 없고 새로 입시를 치르지 않는 한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는 길도 막혀있는 것이 중도 탈락생의 처지다.
방송통신 대학같은 공개대학으로의 편입의 길은 있다지만 그것은 현실을 외면한 얘기일 뿐 중도탈락은 대학생활의 끝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중도탈락은 인생탈락, 그러니까 배수의 진을 친 셈치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이 아마 문교부의 입장일수 있다.
물론 한 제도를 정하고 그것을 큰 잡음없이 시행하는데 따른 문교당국의 고충을 우리로서 외면할 수는 없다.
기왕에 정해놓은 원칙을 원칙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태도도 수긍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졸업정원을 논의할 때마다 제도 자체보다는 제도운용의 융통성이랄까 유연성을 강조해 온 것이다.
다른 어떤 분야건 마찬가지지만 교육은 특히 모든 사회적 요인과의 유기적인 관련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원칙이 아무리 훌륭하고 교육적인 것이라 해도 사회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나쁘거나 심각하다면 그 운용은 중축성을 필수록 현명하다는게 우리의 소견이다.
지난 학기의 경우 남녀공학대학은 열부학생의 입대 등으로 탈락의 진통은 상대적으로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군대에 간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돌아오는 2, 3년후에는 꼼짝없이 초과모집 된 30%가 전원탈락하고 그 숫자는 해가 갈수록 많아질것은 뻔한 일이다.
제도의 고지식한 운영으로 빚어지지는 부작용도 무시할수가 없다.
가령 학과별로 일정학생을 탈락시키도록 된 현행제도는 다른 대학에 갔더라면 성적이 우수했을 일부 학생들마저 탈락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변 회의에서 몇몇 대학총장이 일률적인 탈락을 적용으로 우수학생의 강제 탈락이 불가피한 점올 졸업정원제의 모순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런 뜻에서 경청해야 한다.
문교부가 졸업정원제의 학년별 탈락비율을 자율화하겠다고 한것은 그나마 융통성을 보인 조치라고 할 수 있지만, 이기회에 대학에 대한 재경의 폭은 한결 넓어져야함을 강조하고자한다.
오늘날 문교행정의 큰 문제들은 정부가 간여하지 않아도 좋은일에 끼어들어 생긴 문제들이 적지 않다.
졸업정원제처럼 학생과 학생간 또는 교수와 학생간의 인간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일수록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교육을 위해 유익하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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