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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선도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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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안보는 항상 걱정거리다.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흔히 개인이나 국가는 자위권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하지만 아무리 경호원이 많고 군대가 강력하다 해도, 또 주변 강대국의 위협에 맞선다며 나라 전체를 병영화한다 해도, 자신의 주변과 세계가 뿌리 깊은 불신을 기초로 한 적대적 관계에 의해, 불안하고도 비정상적인 가치관에 지배당하고 있다면 이러한 안보위협은 해소될 수 없다.

▶ 김석환 논설위원

베이징(北京)과 유엔에서 지난주 내내 보인 북한과 이란 핵 문제에 대한 갈등과 논쟁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다시 던진다.

자위권, 군대, 경호원, 물리적 방법, 봉쇄 등의 단어가 상기시키는 방법들은 안보위협을 제거해 평화를 유지시키는 필요 조건이 될지는 몰라도 충분 조건은 아니다. 안보 위협의 해소는 결국 평화를 만드는 구조, 상호 신뢰의 구조를 강화하는 틀과 같은 보조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본질적인 노력과 믿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보여준 미국의 물리력을 동원한 정책의 실패에서도 입증된다. 미국의 힘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파괴적 능력, 괴멸적 능력에서만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했지, 그것이 평화를 만드는 능력에서 세계를 압도하고 있음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실패에 직면했는가.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대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적어도 앞으로 십수 년 안에 제국적 파워의 많은 부분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냉전이 종식된 뒤 세계는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한 외교안보 독트린을 요구하고 있는데, 9.11을 감안한다 해도 미국은 새로운 철학을 바탕으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과거 소련에 맞서 내세웠던 대(大)봉쇄정책, 영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내세웠던 저지정책, '거대한 게임'의 변형에 불과한 배타적 외교안보 독트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 외교의 철학적 기반이 상실돼 세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현재 미국은 분명 향후 20~30년간 개별적 능력에서 미국을 추월할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을 군사적 우월국이자 자유주의 시장경제 모델과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확보한 강력한 국가다.

하지만 이러한 조건은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가깝게는 18세기 유럽이 전 세계를 식민 지배 상황으로 내모는 군사적 우월성과 그리스 문명의 철학을 바탕으로 타지역의 문화를 야만적이고 열등하며 위험한 것으로 몰아붙이며 자신들의 행동과 지배를 정당화했다.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타지역과 민족.문명에 대한 편견, 야만화 작업에 대항하는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미국과 유럽은 이러한 편견과 야만의 덧씌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특히 그것이 국가안보나 외교적.경제적 이익 충돌, 가치관 차이에 의한 문명갈등적 양상을 보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미국이 이란과 북한 핵, 그리고 인도.이스라엘.일본 등에 보여주는 핵의 2중.3중.4중의 잣대는 미국 나름의 팩트에 근거한 기준이라는 강변에도 불구하고 분명 이러한 문명적 편견과 연관이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는 없다.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가 세계적 관심을 끌어온 지는 이미 십수 년이 된다. 지난 세월 미국과 세계는 끊임없는 봉쇄.확산 저지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러한 봉쇄의 노력이 제대로 작동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의회 의장이 말했듯 핵 확산 문제도 봉쇄만으로는 풀릴 수 없다. 여기엔 역시 신뢰구조가 전제돼야 한다.

베이징 회담은 한국에 북.미 간 신뢰구조를 만드는 작업에 한국의 선도적 노력이 더 필요함을 보여준다. 한반도 평화 정착 구조의 마지막 단계는 핵과 관련된 군사적.기술적 문제만이 아닌 신뢰를 담보한 심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북한과는 동족으로서 상호 간 간극을 메우는 작업을 할 수 있다. 미국은 우방인 한국을 믿고 이러한 '마지막 간극 메우기 작업'을 한국이 선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핵 문제 처리 과정의 문명적 차별과 편견의 의혹도 벗어던질 수 있다.

김석환 논설위원